'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검찰, 직권남용 입증 더 어려워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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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기자
입력 2020-01-3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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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직권남용죄의 적용범위를 크게 좁히는 판결을 내렸다.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을 비롯해 최근 ‘유재수 부실감찰’ 의혹까지 동일한 죄목으로 기소된 다른 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상고심 선고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직권남용죄(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하급자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직권 남용'과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 등 두 가지로 세분해 이를 모두 충족해야 유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직권을 남용할 ‘고의’는 물론 구체적인 지시까지 모두 불법이어야 한다는 것.

이날 대법원은 우선 “예술위·영진위 등에 특정 예술인들에 대한 정부지원을 배제하라는 지시를 한 것은 직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불법이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하지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지에 대해서는 기준을 높혀 까다롭게 살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다른 공무원, 부서 또는 유관기관 등과의 협조를 거쳐 이뤄지는 것이 통상적"이라며 "이러한 관계에서 요청을 듣고 협조하는 행위를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 등의 공소사실 중에는 그가 산하기관 임직원에게 각종 명단을 보내게 하거나 지원금 관련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행위도 직권남용 혐의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인지를 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 취지다.

이날 대법원의 판단에 향후 검찰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재판에 넘겼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막바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런 사건들에서 검찰은 앞으로는 불법적인 의도를 포함한 권한남용 정황이 있다해 지시의 내용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공소유지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날 파기환송이 무죄판결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날 판결을 통해 대법원이 ‘문화계 인사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등은 불법’이라고 판단하면서 ‘대상자들을 배제하라는 요구’ ‘지시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사업집행 저지’ ‘배제 대상자에게 불리한 추가기준 부가’, ‘배제대상자를 표적으로 하는 사업 재공고’  등은 위법한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김남국 김남국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김기춘 등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이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은 피고인들의 행위에 대해서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라며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이념적 성향 등을 이유로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은 예술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직권남용 성립과 관련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였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검토돼야 할 구성요건이다”라며 “피고인들의 여러 범죄사실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판단 후 그 중 일부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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