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태춘 국가인권위원회전문상담위원]
대화하자고 해놓고 하는 짓은 일방적인 설교나 자기주장뿐인 것이 세태이고 나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내 주장이 너무 강하여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것이 나의 특징이다.
대화를 한다지만 내뱉기만 하고 경청을 하는 자세는 없는 것이 바로 나였다. “hearing without listening”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고 한자로 적어지는 이 표현이 참 철학적 언어다.
어려서 처음 이 소리를 듣고 무진장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말을 귓등으로 듣다니 ~ 내 말 좀 잘 들어주라는 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귓 등’이라는 말이 참 해학적인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말을 안 들어 주는데 대한 분노의 말인 것도 같다.
구절 중 "경청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얻는 것이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이며 내 태도가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내가 할 말이 있어도 우선 들어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도 문득 ‘해 지겠네“하는 푸념으로 상대를 볼 때도 가끔 있다.
경청이란 심리학에서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動機)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한 기법이다』고 설명한다. .
"말을 하는 사람은 남에게 이익을 주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아라비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이야기는 오래 전해온다. 생각으로 말로 많이도 변해보려 하지만 안 되는 것이 또한 이것이다, 싸움의 현장에서 보면 ‘자기말만 늘어놓는 일’ 이것이 문제이다.
경청의 3단계를 ‘귀로 듣고’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고 식자들은 말한다. 여기에 아울러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 때문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려한다, 내 이익을 챙기고 상대를 이기려니 내주장만 늘어놓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 일상이다.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다”는 이분법적 사고의 소통행태이기도 하다.
욕심은 갈등을 - 갈등은 분노를 - 분노는 갈라섬을 불러오고 - 갈라지면 결국."너는 너고 나는 나"로 끝난다.
결국 세상에 모든 문제는 결국 나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내가 상대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은 물론 경청하지 않는데서 생긴다는 것에 오늘 한번 나를 더 돌아본다.
의식적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버릇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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