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대길의 의미
입춘(立春)은 왜, '봄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입춘(入春)을 쓰지 않을까. 여러 가지 풀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임신'설(說)에 마음이 기운다. 그러니까, 임신을 하면 아이가 섰다고 하듯 우주의 뱃속에 봄이 섰다는 의미다. 봄이 들어선 날부터 계절의 입덧이 시작된다. 나른하고 싱숭생숭하고 알 수도 없이 예민해지는 마음의 입덧이 온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든다. 입춘은 대개 음력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에는 섣달에 들기도 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일 때로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하는 날이다. 황경은 천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표현인데 대략 북극과 남극을 관통하는 지구의 축과 태양면의 각도를 표시하는 선이다.
이날, 문지방에 써 붙이는 글을 입춘방(立春榜. 혹은 입춘첩, 춘첩)이라고 한다. 궁궐에서는 신하들이 지어올린 신년축시를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 붙였다. 이것을 민간에서도 흉내내서 입춘방으로 정착되었다. 예전엔 해마다 이맘때 대문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글씨가 붙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봄이 서니 크게 길할 것이라는 의미다. 희망을 담은 말이기도 하지만, 대개 태양이 더 공들여 볕을 내줌으로써 곡식도 자라고 사람도 살기에 좋으니 당연히 길한 상황이 많을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입춘대길을 써붙이는 뜻은, 앞으로의 일들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 한켠에는 겨울을 나느라 힘겨웠던 마음의 피로가 숨어있다. 이제 좀 훌훌 떨치고 사람도 짐승도 벌떡 일어서고 싶은 것이다.
# 건양다경의 의미
그런데 입춘방에 함께 쓰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은 무슨 뜻일까. 입춘대길과 비슷한 뜻이지만 여기엔 옛사람들의 '해시계'가 숨어있다. 건양(建陽)이란 양기를 돋운다는 의미다. 양기는 무엇일까. 남성의 기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원래의 뜻은 햇살 기운이다. 여기서는 뒤의 의미로 쓴다. 겨울에도 햇살은 있고 봄에도 햇살이 있는데, 왜 굳이 입춘을 맞아 그 햇살 기운을 말하고 있을까.
옛 사람들의 '시간'에 관한 생각을 잠깐 들여다 보자. 한 해는 왜 한 '해'이며 한 달은 왜 한 '달'인가. 1년은 바로 '해'의 순환을 시간으로 번역한 것이며 1개월은 '달'의 순환을 시간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달이 차고 이우는 것이 한 달의 순환이듯, 해가 큰 원을 한번 그리는 것이 바로 한 해의 순환이다.
그 해가 처음 햇살을 낼 때가 언제인가. 바로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1년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 낮이 짧다는 것은 해가 짧다는 것이며, 해의 기운이 약하다는 것이다. '해'의 입장에서 보자면 숨 넘어가기 직전처럼 파리하고 해쓱하다. 가장 약해진 해의 기운을 본 하늘은 그때부터 아주 미미한 축복을 내리기 시작한다. 1년중 밤(陰)이 가장 긴 동지, 추위의 한 복판. 그 때 일양(一陽, 햇살 한 가닥)이 시생(始生, 태어남)한다. 그때 함께 태어나는 것이 매화의 화정(花精)이라고 한다. 이 꽃은 이날 생의 기운을 얻은 뒤 봄날에 마침내 꽃으로 벙그는 것이다.
입춘에는 햇살이 비로소 제 세력을 얻어 튼튼해지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해가 뜨고 지는 것 말고, 365일을 단위로 큰 해가 뜨고 지는 이미지를 생각해보라. 입춘 때는 마침내 그 햇살이 돋아오르는 때이다. 동짓날은 그 햇살이 산 아래에서 부옇게 동트는 때이다. 큰 해가 돋는 것을 계산하여 그 일출을 기념한 것이 바로 입춘인 셈이다.
햇살이 튼튼해지는 일은, 생명에게는 최고의 축복이다. 이제 모든 것은 생명 속에 들어있는 프로그램 대로 번성과 성숙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러니 경사 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서 건양다경이다.
하지만 그 좋은 햇살도 잘못 쓰면, 눈물이 찾아오고 한숨이 들끓을 수 있다. 그러니 좋은 햇살을 좋게 써야 한다. 좋은 때와 좋은 날과 좋은 기회를 좋게 써야 한다. 햇살처럼 스스로 따뜻함을 돋워라. 37.5도의 그 체온만한 마음을 남에게 내놓으라. 감사하고 음미하고 북돋우며 겸허하게 따뜻함을 쓰라. 그래야 진짜 경사로움을 쌓게 된다. 건양다경 네 글자만 제대로 읽어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복을 쌓는 방법을 일상화한 셈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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