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추억 속 후베이성은 과거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 위(魏)·촉(囑)·오(吳) 영웅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 삼국지의 주 무대였다. 적벽대전, 삼고초려, 형주성 전투 등 소설의 약 70%가 후베이성을 배경으로 펼쳐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한을 비롯한 후베이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이른 바 우한폐렴의 진원지로 전 세계 '악명'을 떨치게 됐다. 우한 사투리로 말하면 그야말로 ‘댜오더다(掉得大)’다. 아주 불행한 일을 겪었다는 의미다.
우한을 '전염병의 온상'이라고만 기억하는 건 비극이다. 삼국지의 본고장 말고도 중국의 교통허브, 중국의 디트로이트, 내륙의 소비도시까지, 후베이성 우한 앞에 붙일 '아름다운' 수식어는 얼마든지 많다.
“백성은 어디 있는가. 골짜기 주검이 됐구나. 강산은 그대로인데, 마을은 쓸쓸하기 그지없구나.”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岳飛)가 읊은 시 '만홍홍(滿紅紅)'의 일부 구절이다. 그는 당시 우한의 황학루(黃鶴樓)에 올라 전란으로 황폐해진 전경을 내려다보며 탄식했다. 아마도 약 천년이 흐른 오늘날 신종 코로나 폐렴으로 거리에 인적 하나 없는 쓸쓸한 우한 시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황학루에 오르면 우한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7년 전 기자가 이곳에 올랐을 때만 해도 우한은 곳곳마다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황학루는 우한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랜드마크다. 과거 형주성을 빼앗은 오왕 손권이 촉과 싸우기 위해 서산 서쪽 기슭에 쌓은 망루(전망대)였다. 우한의 황학루를 시작으로 후베이성 곳곳엔 삼국지 명소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삼국연의의 총 120회 중 70회가 넘는 이야기가 이곳 후베이성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삼국지를 취재했을 당시 만났던 장다화(張達華) 전 후베이성 여유국 국장의 말이다. 그는 후베이성 관광 총책임자였다.
적벽대전, 형주고성, 장판교 전투, 삼고초려 등 이야기가 모두 후베이성에서 벌어졌다. 후베이성의 츠비(赤壁), 징저우(荆州), 어저우(鄂州), 징먼(荆門), 샹양(襄陽), 이창(宜昌) 등이 바로 그 무대다. 지금은 우한처럼 봉쇄령이 떨어져 모든 교통과 인적 교류가 끊긴 채 마치 섬처럼 고립돼 있지만.
◇중국의 배꼽=중국인들 사이에서 우한은 ‘중국의 배꼽’으로 불린다. 지도 상으로 보면 거의 중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삼국지 영웅들이 후베이성을 배경으로 피비린내 나는 격전을 벌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창장(長江) 중상류에 위치한 우한은 창장과 한수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예로부터 수로 교통이 발달해 상업무역이 번성했다. 과거 “십리에 걸쳐 돛이 늘어서 있고 수만개 가게 등불로 불야성을 이룬다’는 말로 우한을 묘사했을 정도다.
중국 저명한 역사학자 이중톈(易中天)은 저서 ‘독성기(读城记)’에서 우한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의 선(一線, 베이징~광저우 고속철)이 관통하고, 두 강(兩江, 창장과 한수이)이 교차해 흐르는 곳에 삼진(三鎮, 우창·한커우·한양(漢陽)이 정립해 있다. 오방 사람이 잡거하고(五方雜處), 아홉 성으로 두루 통한다(九省通衢).” 한마디로 교통요충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우한은 오늘 날 중국 전국 각지를 육·해·공으로 원활하게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우한 톈허국제공항 여객량은 전년 대비 10.8% 증가한 2715만200명에 달했다. 지난해 중국 내륙도시 국제공항 중에서는 정저우(허난성), 창사(후난성) 다음으로 3위였다. 현재 이곳서 운영되는 국내선은 70개 노선이 넘으며, 국제노선(홍콩, 마카오, 대만 포함)은 40개가 넘는다
우한은 고속철 심장부이기도 하다. 베이징~광저우(광둥성), 상하이~청두(쓰촨성), 우한~주강(장시성) 고속철을 비롯한 열차가 우한을 관통한다. 명절 연휴 때 하루 평균 우한 3개 열차역을 오가는 열차만 700대가 넘을 때도 있다.
중국이 30억 인구가 대이동하는 춘제(春節 중국 설)를 앞두고 우한시를 오고 가는 육·해·공 교통로를 모두 통제한 이유다.
◇중국의 디트로이트=탄탄한 교통 인프라를 바탕으로 우한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몰려 있다. 충칭, 창춘, 상하이와 함께 중국 4대 자동차 메카로 불린다. ‘중국의 디트로이트’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우한의 지난해 지역 총생산액(GDP)이 약 1조7000억 위안(약 288조원)인데, 이중 4분의 1 가량을 자동차 산업이 기여했다.
특히 우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서 둥펑자동차 로고가 박힌 자동차를 볼 수 있는데, 중국 3대 자동차기업 둥펑자동차 본사가 소재한 곳이 우한이다. 우리나라 기아차를 비롯해 푸조시트로앵(PSA), 혼다 등과 합작하고 있는 둥펑자동차의 지난해 신차 판매량은 360만대로, 상하이자동차에 이은 2위였다.
둥펑자동차 본사 이외에도 르노, 혼다, 푸조,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공장이 우한에 소재해 있다. 우한에 소재한 자동차 관련 업체만 2만개가 넘는다. 7개 완성차기업, 12개 공장, 5000개 부품업체 등이 몰려있다. 일본 경제일간지 닛케이에 따르면 우한의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 2018년 170만대였다. 2012년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준이다. 이에 따른 자동차 산업생산액만 4000억 위안이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입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후베이성 당국이 춘제 연휴를 지난 달 24일부터 오는 13일까지 2주 추가로 연장하면서 모든 공장이 3주간 사실상 휴업에 들어갔다. 게다가 PSA, 혼다, 르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아예 현지 주재원을 철수시키는가 하면 본사에선 사실상 우한으로의 출장 여행도 제한했다.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내륙의 소비도시=우한의 인구는 상주인구까지 합치면 1400만명에 육박하다. 게다가 구매력도 상당하다. 1인당 GDP는 이미 2만 달러(약 2333만원)도 넘었다.
지난해 중국 제일재경일보가 꼽은 중국 신(新) 1선도시 15개 순위에서는 청두, 항저우, 충칭에 이은 4위를 차지했다. 시안, 쑤저우, 톈진보다도 높은 순위다. 신 1선도시는 중국 4대 1선도시인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을 이을 후보군 도시로, 성장속도가 빠르고 소비력이 막강한 도시들을 일컫는 말이다.
전 세계 명품업체도 우한에 둥지를 틀고 있다. 2008년 루이비통을 시작으로 구찌, 베르사체, 보네가베네타, 아르마니, 까르띠에, 발리, 불가리, 티파니, 디올, 에르메스 등이 우한에 매장을 운영 중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명동이라 볼 수 있는 우한의 '한제(漢街)'에 가면 약 1.5km 정도의 길을 따라 양쪽에 조성된 유럽풍 쇼핑몰엔 온갖 명품 매장이 즐비해 있다.
매장 위치 선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스타벅스가 우한에만 모두 1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경제발전 수준이 높고 상업소비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우한 지역 경제, 특히 관광·소매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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