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신종 코로나와 시 주석의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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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2-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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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소위 '우한 폐렴'이라는 예상치 못한 초대형 악재로 중국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연일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내며 대륙을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는 아직 지구촌의 대유행(pandemic) 전염병 단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적극적인 통제 조치에도 확산이 멈추지 않아 중국 당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감염 공포의 쓰나미로 남북한과 일본 등 주변국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미국과 유럽 국가들까지 중국인들의 입국을 통제하며, 거대한 중국 대륙이 사실상 외부로부터 고립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자국 기업들의 중국 내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교민과 주재원을 철수시키는 초강도 조치를 취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중국인 그리고 외모가 비슷한 동양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와 배척 현상도 바이러스처럼 확산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 고조되는 인민들의 분노와 불신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홍콩 시위로 심하게 흔들렸던 시진핑 국가주석의 리더십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2000년대 들어 신종 감염병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002년 겨울 중국 남부 광둥지역에서 발생한 사스(SARS)는 수개월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2003년 초까지 중국 당국이 언론의 보도를 막으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해 4월 베이징엔 이미 150명 이상의 감염 환자가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당국은 13명으로 축소 발표하며 전염병이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고 진실을 숨겼다. 이번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코바'처럼 사스는 동물(박쥐) 숙주 코로나바이러스 변종에 의해 사람으로 종간의 벽을 넘어 감염이 돼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스와 코바 둘 다 중국인의 야생 동물을 먹는 식습관과도 연관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전염병이 발병했지만, 중국 당국은 초기 대응 실패로 또 한번 화를 자초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국 공산당 체제의 관리 시스템이다. 이번에도 발병 초기에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제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축소 은폐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고질적 병폐는 지구촌의 공포를 더욱 키우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난 5일 외교적인 갈등을 불사하고 중국에서 자국민의 전면 철수령을 권고한 것은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우한 화난 수산시장에서 원인불명의 폐렴환자가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해 12월 8일이었다. 이 곳은 열약한 위생환경에서 뱀과 고양이, 오소리를 비롯한 각종 야생동물을 현장에서 잡아 고기를 파는 가게가 즐비한 곳이다. 하지만 한 달이 훨씬 지난 1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정보 은폐자에 대한 엄벌조치를 발표할 때까지 누구도 위기 상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500만명이 넘는 우한 시민이 외지로 빠져나가 바이러스가 대륙 전체 그리고 해외로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가 공안에 잡혀가 조사 받고 훈계를 받았던 중국 의사 리원량의 사망 소식은 중국인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우한시 당국이 정보 통제보다 신속한 대응으로 방역에 나섰다면, 신종 코로나의 초전 박살도 가능했을 것이다. 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우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의 탕이밍(唐翼明)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중국 당국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공개서한을 내놓았다. 중국의 엄격한 사회 통제 시스템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예외적인 일로, 리원량의 죽음이 시진핑 체제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온다.


아무튼 호미가 아닌 가래로 막을 수밖에 없는 큰일이 마침내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 전 세계는 중국 정부가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며 국력을 효과적으로 결집해 슬기롭게 난국을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시 주석은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이 신종 코로나와의 '인민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에게 2020년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 지도부가 전면적 샤오캉사회(전 국민이 먹고살 만한 수준의 사회)를 완성해야 하는 목표연도이다.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이 부르짖는 중국몽의 1차 목표로 국내총생산(GDP)을 10년 전보다 2배로 늘리는 것이다. 이젠 그에겐 중국몽 실현보다는 당장의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번 사태는 좁은 의미에서 국가의 공공보건 위기 상황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엄중한 컨트리 리스크가 전면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이번 사태 발전에 따라 정치, 경제, 산업,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구체화될 크고 작은 중국에 대한 하방 리스크(downside risk)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현재 중국은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총생산의 18%나 차지하고 있다. 사스가 발병했던 2003년에는 4%에 불과했다. 당시 9개월간 지속된 사스는 774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이번에 발생한 신종 코로나는 그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누적 사망자도 벌써 800명을 넘어섰다. 이번 사태가 중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얼마나 클까? 바이러스가 중국의 희망처럼 이달 중순 정점을 찍고 다음 달 말이나 4월 초 끝날 경우 중국의 1분기 GDP는 1~2% 포인트 정도 하락할 전망이 우세하다. 이후에는 재정·금융·감세 등 각종 부양책을 동원해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전망이다. 결국 이번 사태가 1분기 내에 제어될 수 있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신종 코로나 발병 이후 두달을 조금 넘긴 지금, 중국과 세계 경제 둔화는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주부터는 후베이성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가동을 멈추었던 중국 기업 상당수가 문을 열 예정이다. 춘제(중국 설) 연휴 연장으로 보름 이상 직장을 떠나 있던 사람들이 대거 몰려오면 신종 코로나의 확산이 폭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중국 당국은 여러 도시들의 엄중한 생필품 공급 부족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의 공장'이며 소비 대국인  중국의 생산 차질이 길어지고, 수입을 줄이면 글로벌 경제도 동반 침체사이클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재채기를 하면 대중 의존도가 심한 한국 등 주변국들이 가장 먼저 독감이 걸린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부품 조달이 안 되어 생산차질을 빚고 대중 진출 기업들은 사업계획 수립조차 못하는 등 올해 우리 경제도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중국 내 경제 활동이 거의 '동면' 수준으로 떨어지자 세계 주요기관들은 올해 중국 경제 전망을 조정하고 있다. 올해 중국 GDP 증가율이 기존 전망보다 1.2% 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는 국제신용평가회사 S&P의 분석까지 등장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중국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바오류(6%대 경제 성장률 사수)에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지 않을 경우 성장률이 5%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경기 둔화는 중국 지도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실업률 상승과 소득 감소로 이어지며 시 주석의 중국몽 외침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이럴 경우 그동안 중국식 사회주의 기치 아래 일사불란하게 통제되어 오던 거대한 사회에 균열이 나타나며 중국의 정치적 기반까지 흔들 수도 있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의 민주화 시위 사태로 시진핑 국가 주석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연임에 성공해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신년 초부터 중국을 휩쓴 전염병으로 시 주석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번 상황은 과거 대륙을 휩쓴 비슷한 호흡기 전염병 사태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다. 사태가 악화되고 장기화되면 중국 경제에 '블랙 스완'(발생 가능성은 작지만, 일단 벌어지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이 될 우려가 있다. 시 주석이 신종 코로나 격퇴에 사활을 걸며 총력을 다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사태의 국내 정치적 파장이다. 정보 은페와 초기 대응 실패로 지방정부 책임자들이 대거 옷을 벗고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 책임자들이 중앙정부의 명령 없이 독단적으로 판단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관례로 보면, 시 주석도 사태를 숨기며 시간을 허비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 주석은 춘제 당일인 1월 25일 최고 권력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해 리커창 총리를 '중앙 전염병대응업무 영도소조' 조장에 임명했다. 이후 그동안 시 주석의 1인 체제 권력 강화로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진 2인자 리 총리가 시 주석 대신 오랜만에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매일 시 주석의 동정을 1면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하던 중국의 관영 언론매체가 그에 대한 뉴스를 보도하지 않는 것 자체도 서방 언론에는 뉴스가 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내부 움직임은 외부세계가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적 운명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침내 중국에서 사라지더라도 결과적으로 중국에 엄청난 경제적 피해와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면 현존하는 중국의 절대권력 시 주석에겐 엄청난 타격이다.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는 현재 '보이지 않는 손'으로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중국의 공산당은 시 주석이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언제 직접적으로 선봉에 나서는 게 자신에게 유리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윌슨센터의 중국 전문가 루이 종은 지난주 CNN에 밝혔다.

중국의 정치 불안은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외교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당장 시 주석의 방한문제도 걸려 있다. 한국은 역내 공급사슬의 중심이며 이미 우리의 최대 경제 파트너인 중국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앞장서 돕는 것이 국익에 중요하다. 중국을 놓고 즉흥적인 감정이나 이념에 치우치기보다는 장기적인 실리(實利)를 고려하며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고난에 처한 중국인들을 향한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때이다. 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가 되어주는 급란지붕(急亂之朋)이 진정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는 한·중·일 3국이 의지만 있다면 내셔널리즘을 초월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삼각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도 전 세계에 일고 있는 반중국 정서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보다 멀리 바라보면 된다. 잘살고 부강한 나라 건설도 중요하지만 보다  투명한 사회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사회로 전진해 가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8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예방을 받고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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