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인 지난 2015년 12월 한국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미국 보건부 산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표방하며 질본 수장을 국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질본의 위상은 여전히 낮다. 특히 '감염병 파수꾼'으로 불리는 역학조사관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방역 체계가 아직도 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장은 "10년 주기로 나타나는 신종 바이러스가 5년 주기로 빨라진 만큼 촘촘한 방역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최근 정부가 보여준 발빠른 대처는 방역 의료시스템의 변화가 아닌, 5년 전 메르스 사태를 겪은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어 "정부가 질본을 사령탑으로 최소 5년 단위의 새 방역 체계를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확보하기 위해 질병관리청으로 하루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학교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식약처는 지방 식약청이 다 있다. 특별사법경찰처럼 조사도 진행해 불량식품도 적발한다"며 "식약처는 질본이 따라가야 할 모습이다. 분사를 잘해서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감염병은 일반 정책과 완전히 다르다. 전문가의 영역인데, 현재는 역학조사관도 비전문가가 뽑는 실정"이라며 "질본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식약처가 오늘날의 식약처가 된 것은 내가 원하는 사람을 뽑아 전문성을 갖고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전문가들은 한국의 역학조사관이 세계보건기구(WHO) 지침과 비교해 3배 이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역학조사관 증원을 위해선 질본의 지위 격상이 우선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효진 교수는 "질본의 지위가 올라가야 전문가들이 역학조사관에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역학조사관은 대응 체계가 아니라 예방에 방점을 둬야 한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를 겪는 지금 마저도 대응 체계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예방이 중요하단 것을 학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미래에 대한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리를 먼저 만들기 전에 역학조사 전문가들이 지원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병율 교수는 "역학조사관은 근무환경이 열악해 지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면서 "농림부나 식약처 각 기관은 해당 분야의 산업과 연관돼 있다. 식약처는 제약과 의료기기, 식품 산업이며, 농림부 역시 마찬가지다. 검역관들이 그 기관에서 일을 하더라도 나중에 퇴직 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있단 의미다. 역학조사관도 계약이 끝난 후 경력이 인정돼 민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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