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국민들의 불만은 다양하다. 방역에서 검역체계까지, 바이러스 보균 의심자와 확진자의 격리부터 지금도 국내로 유입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과 앞으로 돌아올 약 7만여명의 중국 유학생들까지, 각종 문제의 불안감이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의 모든 관련 부처는 지금 불철주야 국민의 안위와 건강을 지켜내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비록 ‘열 가지를 잘한다 해도 하나를 못하면 국민의 언성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불만은 중국의 눈치만 보는 정부 당국의 태도에 있다. 중국인의 입국부터 항공기의 중국 출입항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다른 나라의 단호한 대응 수준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중국 때문에 이런 국가적 비상사태를 겪으면서도 정부가 왜 중국에게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보호조치를 적극 취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그저 답답할 지경이다.
정부의 중국 ‘눈치 보기’, ‘저자세외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0년대 탈북자가 생기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탈북자들이 중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귀순하거나 이들의 국제법적 난민지위의 인정 문제를 반대한다. 정부는 이 문제가 중국과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왔다. 2003년 ‘재외동포법’이 발효되면서 중국 ‘눈치 보기’는 더욱 심해졌다. 이 법은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나가 해외국적을 취득했지만 국내 호적을 입증하는 동포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해줌으로써 이들의 귀환을 허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중국적을 불허한다. 따라서 정부는 당시 중국의 눈치를 보며 중국동포를 우선 제외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정부의 중국 ‘눈치 보기’는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지난 3일 대통령은 ‘중국의 어려움이 바로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중국에 다시 한번 ‘감성 팔이’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지난 3년 동안 틈만 나면 중국에게 우리나라는 중국과 ‘운명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의 ‘감성 팔이’ 다음날인 지난 4일 신임장도 안 받은 주한중국대사가 서울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가졌다. 그야말로 우리 정부의 신임장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대사는 첫 “공식행사”를 가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 정부가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를 우회적으로 비방하고 나섰다.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 후베이성에 대한 출입국금지조치에 유감을 표시했다. 한국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이 “과학적이고 권위 있는” 기구에 “근거”하는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을 너무 오버했다는 것이다. 대사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국 국가주석의 “공동운명공동체”를 운운하면서 한중 양국이 “서로 이해하고, 역지사지해서 했으면 한다”라고 부연설명까지 해줬다. 대통령은 7일 대사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가까운 이웃 사이에 어려움을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언급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정서와 여론은 대통령이 저자세로 중국에게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 기억 속에는 사드배치 논쟁 때 중국이 보여준 태도와 언행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의 안보를 위해 국가로서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의 권한을 무시할 정도였다. 중국이 내놓은 온갖 위협발언과 제재조치는 내정간섭의 수준의 것으로 우리 뇌리에 박혀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뼈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소환시키는 정도였다. 100년 전 청나라의 원세개가 이홍장으로부터 전권을 완전히 이양받기 전부터 조선의 조정을 간섭한 장면을 다시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했다.
그런데 누굴 탓하랴. 국민은 대통령이 중국 눈치를 보는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시진핑의 방한을 성사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로 이해하려들 한다. 2017년부터 대통령은 시 주석의 방문을 애원하는 모습이다. 행여나 상반기 그의 방한이 성사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의 마음을 일부 국민들은 동정할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주한중국대사의 발언으로 기만 당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데 있다. 중국대사는 한국의 이해를 촉구하는 발언에서 ‘역지사지’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정부와 대통령의 귀에 매우 달콤한 캔디였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이웃국가로서 도움을 줘야 하고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기에 운명을 같이한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중국 측의 이런 발언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사태가 진정되면 중국은 항상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는 이력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고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신세로 전락될 것이 자명하다.
2003년 7월 7일 중국의 사스사태가 진정되어가던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위기를 국익 극대화로 이용하는 외교’의 마음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기록에는 그가 사스사태 이후 중국을 방문한 첫 외국인 지도자였다. 사스 공포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통령의 방문 용단에 중국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2004년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중국 특사는 ‘5개의 양해사항 구두합의’를 담은 “쪽지”를 내비쳤다. 그는 그 쪽지의 내용이 후진타오의 구두메시지라는 기가 막힌 설명을 곁들였다. 그 쪽지의 합의는 그러나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고구려는 이후 중국 역사교과서에서 중국역사에 편입되었다.
2008년 5월 12일 발생한 중국 쓰촨성 대지진으로 중국인 7만명이 사망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구호물자, 의료약품과 현금 100만 달러 등 총 500만 달러를 지원했다. 44명의 구조인력도 파견했다. 5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경조사외교’, ‘조문외교’를 감행한다. 대지진의 현장도 직접 방문하여 조의를 표했다. 한·중 기업인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양국 간 역내 경제협력을 강화해 황해를 `내해'(內海)로 만들어가자"고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이 발언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되어 버렸다.
‘조문외교’에도 불구하고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이 발생하자 중국은 북한의 편을 들었다. 국제공동조사위원의 참여 요청도 거부했고 조사결과보고서도 부정했다. 중국은 이를 미제의 사건으로 치부했다. 우리 장병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도 사건 발생 46일 만에 전달됐다. 그리고 11월 북한의 연평도 폭격사건을 중국관영매체가 실시간으로 현장 중계했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중국은 또다시 북한 편에 섰다. 북한의 주장과 같이 우리 군이 북한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로 자행된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도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서해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려 했으나 중국의 반대로 무산된 실정이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를 자신의 ‘앞바다’로 명명하고 한·미연합훈련을 불용한다고 경고했다. 오늘날까지 서해상에서 한·미군사훈련은 없다. 서해가 한·중의 ‘내해’가 아닌 중국의 ‘내해’가 되어버렸다.
2015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은 우방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군의 열병식을 참관하기 위해 천안문광장의 망루에 올라섰다. 이른바 ‘망루외교’가 연출되었다. 박근혜 시기의 한·중관계가 정점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시진핑은 박근혜의 핫라인 전화 통화를 거부했다. 한달 뒤 2월 7일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 후 시진핑은 박근혜의 전화를 받았다. 후문에 따르면 시진핑과의 전화불통이 박근혜의 사드배치 결정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중국 ‘눈치 보기’, ‘저자세 외교’의 문제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김대중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 모두가 똑같이 저자세로 중국을 대하고 있다. 우리의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의존도만으로 이를 해명할 수 없다. 본전도 못 뽑고 ‘감탄고토’되는 게 일쑤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중국의 말대로 하루빨리 우리 외교를 대등하고 평등한 위치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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