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의 이번 예비결정으로 수세에 몰린 SK이노베이션은 ‘빠른 합의’를 원하고 있다. 반면 승기를 먼저 잡은 LG화학으로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실리 추구’ 계산이 한창이다. 업계 최대 경쟁자인 양사가 서로의 자존심을 얼마나 챙길 수 있을지가 조속한 합의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17일 업계와 미국 소식통 등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이미 3조원 가까이 투자한 미국 사업의 리스크가 커진 만큼, 전향적인 태도로 합의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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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시장 퇴출’ 최악 시나리오 피하려는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18일(한국시간) 저녁 도착할 ITC의 결정문을 받아보는 대로 대응방침을 세울 것”이라면서도 “협상의 시기나 보상방안을 말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는 “올 1분기 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협상의 여지는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에 ITC의 결정문이 도착하는 즉시 양자간 막후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양사 대표들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이어온 터라, 조만간 협상테이블에서 직접 만날 것이란 게 재계의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이 전날 입장문을 통해 “향후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면서도 “선의의 경쟁 관계에 있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며 LG화학을 추켜세운 것도 조속한 합의를 염두에 둔 제스처로 읽힌다.
SK이노베이션이 걱정하는 것은 LG화학과의 합의 불발이다. 만약 이번 예비결정대로 오는 10월 5일까지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이 내려질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바로 ‘미국 시장 퇴출’이기 때문이다.
이변 없이 ITC의 최종결정이 내려지면, LG화학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모듈·팩 및 관련 부품과 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당장 지난해 3월 미국 조지아주에 1조9000억원을 투자해 건설 중인 1공장의 생산 물량이 적용을 받을 전망이다. 이외에 2공장까지 추가 증설할 계획인데, SK이노베이션으로선 총 3조원의 투자금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간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ITC 행정판사가 침해 여부를 인정한 예비결정이 최종결정에서 뒤집힌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던 점도 부담이다.
현재 LG화학은 “이번 소송의 본질은 당사의 소중한 지식재산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합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양사 합의 대가는 최소 5000억원 추산
SK이노베이션의 위기감이 클수록 지불해야 할 대가는 클 전망이다. 협상의 키는 합의액 및 방식에 달렸다. 업계에서는 과거 LG화학의 2017년 중국 배터리 기업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Co. Limited)과의 특허소송을 주목한다. 당시에도 ITC에 제소했던 LG화학은 미국 발생 매출액의 3%를 매년 로열티로 받는 조건으로 CATL과 소송을 조기종결했다.
CATL 소송 건이 이번과 유사한 사례였던 만큼, LG화학은 이번에도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특허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합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신 방식은 매출액의 일부가 아닌 최소 5000억원의 비용을 통으로 지불하고 아예 특허권을 구매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자국 기업끼리 매년 로열티를 운운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고, 지난 1년간 LG화학이 소송전에 들인 2000억원의 비용을 한번에 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LG화학도 소송을 조기에 마무리해야 그에 따른 비용도 세이브할 수 있어 실제 협상이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면서 “다만 LG화학이 30년간 축적한 지식재산권이 침해된 만큼, SK이노베이션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그에 상응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 협상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선·신수정 기자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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