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소개된 중국의 한 중소기업 사장의 하소연이다. 왕씨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이 도산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은행이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부실대출 처리로 골치 아픈 중국 은행권으로선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차이신망은 코로나19에 맞서 중국의 '금융전쟁'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 "중소기업 95% 석달밖에 못 버텨" 줄도산 우려 확산
코로나19는 중국 본토에서만 2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감염자만 7만명이 넘어섰지만, 전염병 확산세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내린 봉쇄령, 휴업령 등으로 공장이나 가게를 닫은 업체들은 신음하고 있다.
특히 교통, 숙박, 요식, 소매업 등 서비스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죽는 것만큼이나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선 파산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조기 수습되지 않아 휴업이 장기화하면 석달도 채 못 버틴다는 기업이 태반이다.
중국 명문 칭화대·베이징대가 최근 995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5% 기업이 현재처럼 매출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 최대 석달밖에 못 버틸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달밖에 못 버틸 것이란 응답자 비율도 3분의 1에 달했다.
올해 매출 전망도 암울하다.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매출이 전년과 비교해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고, 30%는 최소 반 토막이 날 것으로 내다봤다.
매출이 곤두박질치면 당연히 기업 부채도 상환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중국 본토 회사채만 총 1조7000억 위안(약 288조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00억 위안이 많다. 올해 상환해야 할 역외 회사채 규모도 300억 달러로, 이 중 49억 달러가 오는 3월 만기가 돌아온다. 블룸버그는 올해 중국 기업 디폴트(채무 불이행) 규모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 중국기업 디폴트 공포···은행권 부실대출률 치솟나
이는 중국 은행권의 부실대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각 기관에선 이미 코로나19 충격에 대한 중국 은행부문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도 내놓고 있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중국 상위 30개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한 결과 부실 대출이 5조6000억 위안 증가해 부실대출률이 6.3%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말 중국 상업은행 부실대출 잔액은 2조4100억 위안으로, 전체 부실대출률은 1.86%에 불과했다. 코로나 충격에 부실대출률이 세배 넘게 증가할 것이란 얘기다. S&P는 전례없었던 수치라고 평가했다.
사실 현재 중국 국유은행의 부실대출률은 1.5% 남짓으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문제는 지방 중소은행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 이미 부실대출률이 40%를 넘는 은행도 있었다. 지난해 4월 중국 심계서는 중국 지방 중소은행의 부실대출률을 조사한 결과, 5%를 넘는 은행이 42곳, 20%를 넘는 은행이 12곳에 달했다며, 심지어 40%를 넘는 곳도 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중소은행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 하방 압력 속 이미 자산 건전성이 악화한 상태다. 지난해에만 네이멍구 바오상은행을 시작으로 랴오닝성 진저우은행, 산둥성 헝펑은행, 허난성 이촨은행 등 모두 4곳에서 '뱅크런'도 발생했다. 뱅크런은 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 상태를 우려한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중소은행 대부분이 중소·영세기업 대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리스크 우려를 키운다. 그중에서도 경제활동이 사실상 멈춘 신종 코로나 발원지 후베이성 중소은행이 리스크에 가장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랴오즈밍 중국 톈펑증권 은행업 수석 애널리스트는 “도시상업은행, 농촌상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비교적 높아 아마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특히 후베이성 중소은행이 직격탄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S&P에 따르면 2018년말 기준 후베이성 160개 중국 국내외 은행 대출잔액이 4조6000억 위안으로, 이중 절반이 우한에 집중됐다. 코로나19 타격으로 이중 상당 부분이 부실대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밍탄 S&P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충격이 중국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을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 은행권이 부실대출을 충당하기 위해 비축하는 대손충당금 비율이 현재 188%에서 55%까지 떨어져 위험 수준에 도달하고, 이로써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도 약 3.8%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기자본비율은 은행 자산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진다는 건 그만큼 부실대출에 취약해 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타격 속에서도 은행권 리스크는 통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은보감회는 17일 기자회견에서 "대손충당금, 자기자본비율 등 방면에서 은행권 리스크 대응력은 비교적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 대출연장 등 대책···'빚폭탄' 잠시 미루는 걸뿐···
일각선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중소기업 줄도산 사태를 우려해 내놓은 유동성 지원 대책도 당장의 경기를 살리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오히려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그동안 부채 압박으로 통화완화에 신중했던 인민은행이 공격적으로 '돈줄'을 풀었다. 지난 10일부터 신종 코로나 여파로 피해를 입은 중소 민영 기업들을 위해 3000억 위안(약51조원)의 저금리 특별대출 자금을 마련해 지원하기로 했다.
또 춘제 연휴가 끝난 3일부터 약 2주에 걸쳐 공개시장 운영을 통해 3조 위안 유동성을 투입했다. 이달 들어서만 두 차례 정책금리도 내렸다.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0.1% 포인트씩 인하한 것. 오는 20일 기준 대출금리 인하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 금리도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레이딩이코노믹스는 LPR 1년물 금리가 현재 4.15%에서 3.95%로 0.2% 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민은행 국장을 지낸 성쑹청 상하이정부 참사는 중국 재경망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더라면 이같은 대규모 통화 완화정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염병 영향으로 우리는 이제 중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신중에서 완화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중국은 부채 압박 등 이유로 돈풀기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인민은행의 통화 완화 기조에 발맞춰 시중은행들도 중소기업을 위해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대출 상환일을 연장하고 있다.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대출을 계속 제공하기로 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는 일부 기업들이 지금 당장 경영난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봤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장기적으로 중국 은행권 부실대출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미 터져야 할 부채 폭탄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는 오히려 가뜩이나 취약한 중국 금융시스템에 더 충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중국 정부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추진해 왔던 '부채와의 전쟁'은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대출에 기대서 간신히 연명해 오던 '좀비기업'들이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사회생할 가능성도 있다. 부채가 많은 부실기업은 이참에 과감히 문을 닫게 해야 하는데, 정부의 대출 정책 지원의 허점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중국이 당장 '전염병과 전쟁'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중국기업 부채와 은행권 부실대출이 중국 경제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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