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로 서울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제작 ㈜바른손이앤에이·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기자회견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곽신애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참석했다. 최우식은 영화 촬영으로 아쉽게 불참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비롯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백인영화 잔치' '영미영화 리그'라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견고한 장벽을 깨고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까지 4관왕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제작보고회를 이 자리에서 했었다. 벌써 1년 정도가 지났는데 영화가 이렇게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곳곳을 다니다가 다시 이 자리로 오게 돼 기쁘다"라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앞서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특정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상상력에서 나온 새로운 이야기로 지난 5월 국내 개봉 이후 1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고, 언론 및 평단은 물론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개봉 5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바 있다. 국내 뿐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며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고 '기생충' 팬덤을 양산하며 다수의 외신과 평론가들을 통해 호평을 받았다.
봉 감독은 '괴물' '설국열차' 등도 빈부격차·사회 부조리를 다루지만 '기생충'이 유독 전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 건 "동시대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괴물' '설국열차'는 SF적 요소가 많지만 '기생충'은 동시대 이야기를 담았다. 이웃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배우들이 실감나게 표현해줬고 우리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분위기와 톤을 다뤄서 폭발력을 가지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작품 출품 및 초청 형식으로 이뤄지는 영화제와 달리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는 전 세계 약 8,000여 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후보작 선정하기 때문에 오피니언 리더라 할 수 있는 8,000여 명 회원들의 표심이 중요했다. 그러나 '아카데미 캠페인 전담팀'을 가진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와는 달리 한국 영화는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자체가 최초기 때문에 모든 걸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익히는 수밖에 없었던 것.
봉 감독은 "코피를 흘려가며 홍보에 임했다"라며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기생충'을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네온이라는 중소 회사와 캠페인을 진행했다. 거대 스튜디오나 넷플릭스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일했다. 열정으로 뛰었다. 그 말은 즉슨 저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 흘릴 일이 많았다는 거다. 인터뷰를 600개 이상 했고 GV도 그만큼 했다. 우리는 아이디어와 팀워크로 물량 열세를 커버했다"고 설명했다.
송강호는 오스카 캠페인을 시작할 때 "아무 생각 없었다"며 "6개월 간 예술가들과 호흡하다 보니 타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었다. 캠페인은 상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작품을 통해 호흡하고 공통점을 나누며 소통하는 과정이었다.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집중 조명 받은 '기생충'과 배우들인만큼 이들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는 배우들과 "시기상조"라는 배우들로 갈렸다.
먼저 이정은은 "'기생충' 끝날 무렵 봉 감독님께 '배우라면 할리우드는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취소다. 할리우드를 안 가도 영화를 잘 만들면 세계가 알아봐주지 않나"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송강호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국내에서도 러브콜이 없다. 13개월 째 일이 없다"라며 툴툴거렸고, 조여정은 "한국말로 하는 연기도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반대로 박소담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으니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고, 장혜진은 "이제라도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못 할 거 없다", 박명훈도 "조용히 추진해보겠다"고 눙쳤다.
봉 감독은 배우들에 관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할리우드에서도 인기 폭발이었다"라고 치켜세웠다.
봉 감독은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 때 톰 행크스 부부를 만났는데 이정은 배우를 보고 정말 좋아하더라. 오랜 시간 (이정은 배우에게) 질문 했었다. 또 길에서 우연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만나 20여 분 간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중 10분은 조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연기와 캐릭터가 정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 배우들이 전체적으로 균형 있었고 미국 배우들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아카데미 투표도 미국배우협회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이 일등 공신 아니었을까 분석도 해봤다"고 자랑했다.
봉 감독은 꿈 같은 날들을 정리하고 담담히 차기작 준비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 팬들이 걱정하는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은 봉 감독에겐 없는 듯 보였다.
그는 "2017년 '옥자'가 끝나고 번아웃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없는 기세를 긁어 모아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오스카 일정을 지나 오늘 날 여러분을 만났다. 이제 마음이 편하다. 끝났다는 기분이다. 곽신애 대표와 2015년에 처음 만나 '기생충'을 이야기 했으니 긴 세월이 흘렀다. 행복한 마무리라고 본다. 쉬어볼까 생각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차기작을 기대 중이니 짧게 쉬고, 얼른 일하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차기작은 언급한 대로 한국영화 1편과 영어영화 1편.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상황과 2016년 런던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영화화 할 계획이다. 또 미국 방송사 HBO와 아담 맥케이 감독과 함께 '기생충' 드라마화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저는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에피소드는 감독 겸 작가인 아담 맥케이가 참여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코미디 범죄 드라마 형식이고 깊이 파고들게 될 거다. 리미티드 라는 명칭을 쓰던데 시즌 별이 아니라 드라마 '체르노빌'처럼 6편 정도를 밀도 있게 만들 예정이다. 초기 단계고 방향과 구조만 이야기 하고 있다. 금년 5월에 '설국열차' TV 시리즈가 나오는데 14년~15년에 이야기 해 지금 방송에 나오니 '기생충'도 시간이 걸릴 거다. 순조롭게 첫 발을 딛고 있다"고 알렸다.
한편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지난해 5월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오는 26일에는 흑백판이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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