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코로나19와 관련한 중국의 부양책 발표로 시장의 불안이 다소 줄기는 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여러 기관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이 우려된다는 전망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엔의 급락은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1.6% 줄어드는 등 일본 경제가 최근 위축된 양상을 보인 데다 최근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한 것이 엔의 하락세를 부추겼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엔화의 안전자산 지위에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해부터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져도 예전만큼 엔화의 가치가 급등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다 올해 1월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하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됐을 때도 엔·달러 환율은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레오 루이스 파이낸셜타임스(FT) 도쿄 특파원은 지난달 칼럼을 통해 "이란과 북한 사태 등 불안 요소가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는 107~110엔 사이를 오락가락했다"면서 "엔화는 예전과 같은 안전자산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무역적자의 증가, 일본 투자자들의 국외투자 증가와 일본 기업들의 해외투자 쏠림 등이 엔화 약세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재무성이 19일 발표한 올 1월 무역통계(속보치)에 따르면 일본의 무역적자는 1조3126억엔을 기록했다. 3개월 연속 적자다. 수출은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JP모건의 사사키 도루 환율 전략가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금리가 낮아지면서 저금리인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다른 곳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열기가 식은 것도 안전자산으로서 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가 줄어들며서 글로벌 금융시장 내에서 엔화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엔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던 엔·달러 환율과 금 가격이 급격히 탈동조화하고 있다. 최근 몇 달간 금 대비 엔화 가치가 빠르게 낮아졌으며, 현재 엔화 표시 금 시세는 1979년의 최고치 기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