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재판이 시작될 무렵부터 의붓아들 사망사건과 관련한 직접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조계 내부에서도 처벌이 가능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A4 용지 76쪽 분량의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내려가며 양형 이유를 법정에서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쟁점은 검사가 제출한 간접증거를 종합할 때 (고유정이)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 차를 현남편에게 마시게 했음이 증명되고, 제3자에 의한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이 합리적 의심 없이 모두 배제돼야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따른 것.
재판부는 또 "피해자가 복용한 감기약이 통상적인 치료범위 이내로 확인됐다 하더라도 그 부작용이 수면유도 효과임을 고려할 때 피해자가 아버지의 다리나 몸통에 머리나 가슴을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의붓아들 살인 사건에 있어 검찰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해내지 못했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의붓아들이 사망한 것은 맞지만 고유정이 죽였다고 '의심없이 볼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
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과거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대를 풍미했던 인기 듀오 듀스의 김성재 사망 사건이다.
부검 결과에는 김성재의 오른쪽 팔에서만 28군데의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고 몸에서는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이라는 약물 성분이 검출됐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김성재의 여자친구 A씨, 검찰은 그 무렵 김성재와 사이가 틀어지고 있던 2살 연상이었던 A씨가 김성재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한 그릇된 욕망으로 김성재를 살해했다며 A씨를 살인 등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A씨가 구입한 약물의 효과나 양, 사망 경위 등을 종합해 보면 A씨가 김성재를 살해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김성재를 죽이지 않았다’가 아니라 ‘A씨가 김성재를 죽였다고 의심 없이 볼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도 이같은 원심 판단의 잘못이 없다며 A씨에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다만 김성재 사건과 같이 '합리적 의심'을 해소하지 못한 의붓아들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고유정도 1심 무죄 판단을 받았다. 지난해 6월 1일 고유정이 긴급체포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265일, 고씨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지 235일 만이다.
초기 수사 실패, 증거 불충분, 그리고 의붓아들 살인사건에 대한 무죄에 대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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