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문제 외에 2020년 원더키디가 정확히 예측한 미래사회의 문제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에 관한 문제다. 2020년 원더키디는 고도화된 AI의 반란으로 생존한 인간들이 기계와 로봇의 노예로 전락한 미래를 묘사했다.
다행히 현실에서는 당분간 AI의 반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AI의 발달로 인간 본연의 역할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금융권의 사례만 보더라도 신한은행은 16개 업무 영역에 대한 지식 채팅과 13개 업무 관련 서비스를 지원하는 AI '몰리'를 가동하고 있다. 또 고객이 비대면으로 제출한 소득과 재직서류 내용의 확인 등 여신심사 과정 필수 확인 작업 등에도 AI를 도입했다.
보험·카드·금융투자업계에서도 AI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한화생명은 AI가 실시간으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심사하는 '클레임 AI 자동심사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미 상당수 보험사가 고객과의 단순 상담 등에서는 AI 챗봇(Chatbot)을 도입한 상태다.
카드사도 일제히 AI의 분석력을 동원해 카드 부정사용거래 적발(FDS) 시스템 구축에 한창이다. AI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매니저 대신 고객의 자산을 운용해주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AI가 벌써 일상으로 이만큼이나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AI의 도입이 진행되는 만큼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2017년 일본 후코쿠(富國)생명은 보험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AI 시스템을 도입한 후 직원 30%(34명)를 감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남의 일 보듯 할 수 없다. 보험연구원은 8년 뒤인 2028년에는 AI 설계사가 기존 설계사를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40만명에 이르는 설계사가 모두 직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다. 은행에서도 최근 5년 동안 1만명 가까운 직원이 구조조정된 배경으로 AI의 도입이 꼽히고 있다.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가 일자리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 영국에서 모직산업의 발전으로 농경지가 양 목축지로 대체돼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 '인클로저 운동'도 대표적이다.
당시 토머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를 통해 "착하고 순한 양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고 시대상을 비판했다. 우리가 AI를 생각하면서 느끼고 있는 불편함을 당시 영국 농민들은 양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16세기 영국은 농민을 위해 양을 도살하지 않았기에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당시 농경지에서 쫓겨난 영국의 소작농들이 도시 노동자로 변신해 영국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어준 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주요국이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질주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AI 발전을 규제했다가는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고 후진국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인간의 일자리를 위해 기술의 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다만 기술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문제와 고통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16세기 영국은 농경지에서 유리돼 빈민으로 전락한 다수 농민을 구제하기 위해 구빈법(救貧法·Poor Law)을 도입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구빈법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노동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노동을 강제했으며, 이에 저항하면 투옥됐다. 노동 능력을 상실한 빈민만이 순수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법이라고 보기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가 기술 발전이나 사회 변화로 발생한 빈곤과 실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것에서 상당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영국의 사례처럼 기술의 발전 자체를 무작정 두려워하고 억제하려 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 문제 인식과 노력이 2020년 원더키디가 묘사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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