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 꼭] 그들만의 경험ㆍ감각으로 피어난 '강렬한 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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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0-02-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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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작가 그룹전 '감각의 섬'

  • 이우주, 자연재료 활용 여러 감정 녹여내

  • 황성원, 사진 매체 속 회화적 요소 첨가

  • 이선근, 일상 속 직관적 감정 선명히 표현

21일 서울 강남구 신한갤러리 역삼에서 이우주 작가가 작품 '조화로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6년 전 보청기를 빼고 일주일 동안 있어 봤어요. 진동밖에 들리지 않더라고요. 너무 불안했죠. 그 당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죠."

이우주 작가는 작품 하나를 소개하며 '소리 없는 경험 세계'라는 표현을 썼다. 일반인은 경험하지 못한 작가만이 겪어 본 일이다. 남다른 경험에서 나온 감각은 작가만의 색깔로 강렬하게 피어났다.
 
서울문화재단은 신한은행과 함께 이선근·이우주·황성원이 참여하는 장애예술작가 3인 그룹전 '감각의 섬'을 오는 4월 27일까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신한갤러리 역삼에서 연다.
 
세 작가는 잠실창작스튜디오 전·현 입주작가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국내 처음이나 하나뿐인 장애예술인 전문 레지던시다. 지금까지 장애예술인 130여명을 발굴하고 지원해왔다. 2018년에는 신한은행과 문화예술 지원 협약을 체결하고, 매년 입주작가 전시회를 열고 있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화남·분노·기쁨 등 여러 감정을 작품에 녹여냈다. 재료는 자연물에서 만들어낸 직접 만든 돌가루다. 작은 돌가루를 분채, 큰 돌가루를 석채라고 하는데 일일이 작업하다보니 시간이 엄청 소요된다. 하루에 12시간씩 그림을 그려도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평균 2개월이 걸린다.

소중히 만든 작품을 통해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의 조화로움. 이 작가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주위에서 좌절한 사람도 많이 봤다"면서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다 같이 조화롭게 살아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신한갤러리 역삼에서 황성원 작가가 작품 '물아일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황성원 작가는 희귀성 난치병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좁아진 생활 반경 안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 작업은 황 작가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을 줬다. 그는 "온몸에 통증이 너무 아프게 와 정말 힘들었다"며 "사진을 찍는 도중 따뜻한 햇살이 내 몸을 감싸며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줬다"고 회상했다.

일반인들처럼 카메라를 렌즈가 앞으로 향하게 들 수 없어 손 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하게 찍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진들이 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물을 찍어도 시간·온도·렌즈 노출값과 작가 신체 움직임 등에 따라 다른 사진이 나왔다.

서울산업대 대학원에서 응용회화를 전공한 황 작가는 "지금은 여건상 붓을 들고 하는 작업을 하기는 힘들지만 사진 작업에도 회화적인 부분을 많이 선택한다"며 "어느 순간 '내가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선근 작가는 일상에서 느낀 직관적인 감정을 선명한 색채로 캔버스에 옮긴 10여개 작품을 선보인다. 주제는 '소름'이다. 이 작가는 "춥거나 무서울 때 생기는 소름도 포함되지만, 개인적으론 선입견이나 강요 없이 스스로 불현듯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쌍둥이 조카를 봤을 때,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떡볶이를 성인이 돼서 우연히 맛봤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내적으로 크게 움직였던 감정을 풍부한 색채와 형태로 표현해 선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시각장애를 겪은 이 작가도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감각을 갖고 있다. 그는 "한쪽 눈이 안 보이고 반대쪽도 점점 안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전맹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며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지만 보이는 것에 대한 형태도 공존하는 작품을 구상한다"고 했다.

이 작가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지워나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장애인치고는 잘했네'라는 선입견을 극복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가 조금이나마 선입견 없는 쪽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상명대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이 작가는 2019년 서울 자하갤러리에서 '큐피드(CUPID)'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독일 바이에른주 파사우시에서 온 한 미술관 관장이 기획전을 제안했다. 이 작가는 "관장이 방탄소년단 영향으로 독일에서도 한국 작품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오는 8월 독일에 가서 (전시) 환경을 살펴볼 예정이다"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장애가 있는 예술인이 넘어야 하는 벽은 아직 높다. 황 작가는 "2018년 개인전을 열려고 했는데, 지원금 문제가 소통이 잘 안 돼 결국 전시하지 못했다"며 "아직 소외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개선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신한갤러리 역삼에서 이선근 작가가 작품 'Rainy day'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신한갤러리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한 이원근(왼쪽부터)·황성원·이우주 작가.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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