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수도인 도쿄에 도착할 수 있는 일본. 세계에서 인정받는 ‘선진국’이면서, 한국인에게 매우 복합적인 심리를 가지게 하는 나라. 그 나라의 정치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인류가 공통으로 쓰는 정의는 없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 시절에 읽은 미국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튼이 내린 “한 사회 속에서 가치를 권위에 따라 배분하는(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 현상 또는 행위라는 정의를 좋아한다. 경제가 가치의 효율적 배분을 하는 시스템이라면, 정치는 ‘효율성’이 아니라 ‘권위성’을 축으로 한다. 이 권위의 핵심은 권력이고, 이 권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이 권력 엘리트(power elite)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헌법이 권력 엘리트의 형성에 관한 것으로 시작하는 까닭이다.
1955년 체제
현대 일본정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개념이 ‘1955년 체제’이다. 도대체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고 미국의 지배 하에 전후체제를 형성하던 일본에서 1955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이루어지고, 그해에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보수정치세력이 합하여 ‘자유민주당(약칭 자민당)'이 되어 중의원 3분의2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 장기정권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그 자민당이 오늘날에도 정권을 잡고 있다.
물론 자민당이 내내 정권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의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전후 최초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1955년 체제’는 1993년에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이 창당되어 오늘에 이르는 약 65년의 세월 중에서 집권당의 자리에서 벗어났던 것은 약 74개월, 즉 6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는 1955년 체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체제는 자민당의 집권이라는 의미보다, 자민당을 지지하는 일본시민사회의 경향을 대표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작금의 일본을 이해하는 데 더 타당하다고 본다.
일본의 민주정치?
1955년에 만들어진 자민당이 65년간 가동하며 59년 동안 일본을 지배해 오고 있다고? 그럼 그게 민주주의? 5년마다 한번씩 정권이 바뀌는 한국인은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시스템과 매우 다른 것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상이성은 두 개의 커다란 요소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나라의 모양, 즉 '국체(國體)'가 다르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여, 국체가 공화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한가? 현행 일본헌법의 제1장은 ‘천황’에 관한 것으로,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지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바탕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입헌군주국이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한국인이 가질 수 있는 위화감과 가장 근접한 시각을 제시하는 것은 일본공산당이다. 일본공산당은 2004년에 개정한 강령에서 천황제에 대하여 “한 개인이 세습으로 국민통합의 상징이 된다는 현 제도는 민주주의 및 인간평등의 원칙과 양립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일본정치의 프레임은 국체의 상징으로서 천황이 존재하고, 현실에 있어서 “국가작용을 행하는 권능을 행정권”이라고 하며, 그 행정권은 내각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각의 수반은 중의원(일본의 하원) 다수당의 총재가 맡는다는 것이다. 이 논리의 귀결로서, 현재 다수당으로서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한 자민당이 내각을 편성하여 행정권을 운용하는 것이다. 결국, 다수당인 자민당의 이념, 지향, 가치체계가 일본의 정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전후의 1955년 체제는 지금도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자민당의 위상은 어떠한가?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를 가지고 있고 각 원에서의 의석수는 다음의 표와 같다.
중의원 정원이 465명인데 과반수라면 233석이 필요하고,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3분의2 의석을 확보하려면 310석 이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관심이 많은 헌법 개정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2 이상의 의석수가 필요하다. 자민당은 현재 중의원 및 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2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참의원에서는 과반수에 미달한다. 자민당이 정치의 파트너로 공명당과 손잡은 소위 ‘자공연립’ 정권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공명당이 자민당과 연립정권의 파트너로 들어간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자민당의 총재는 오부치였는데, 그 이후 모리·고이즈미 등에 이어 현재의 아베 정권에서 내내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공명당은 일본의 불교계 종교법인인 창가학회(創価学会)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중도의 정치세력이다. 창가학회는 일본 성덕태자 시대에 전래되었다고 전해지는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불교의 한 계파로, 재가(在家), 즉 출가를 하지 않고 속세에서 생활을 영위하며 불도를 닦는 사람들을 바탕으로 한다. 공명당이 자민당과 연립을 구성한 1994년경에 창가학회에 가입한 일본인 성인은 1000만명을 넘는다는 추계가 있었으나 정확한 통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연립을 구성하여 자민당을 지지하는 대가로, 아베 내각에서는 국토교통대신 자리를 공명당에 할애하고 있다.
자민당의 파벌정치
자민당은 보수 정당이다. 그러나 자민당의 시작단계부터 오래 유지되어온 55년체제는 어떤 면에서는 서방의 보수 정권보다 시장에 개입하는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정부가 경제와 시장을 주도하는 호송선단 방식의 금융체제와 각종 산업정책,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농업보조금 교부, 대규모 재정정책을 통한 지방공공사업 등의 주요정책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구보수주의의, 자유방임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서구의 보수정권이 시민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고 작은 정부와 시장 개입의 배제를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일본의 자민당은 정부가 나서서 시민의 격차평준화나 사회적 리스크를 해결하는 등의 정책운영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한 자민당이 미국의 정권과 필사적으로 유대를 유지한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에서 태평양의 축이 되어 주고, 그 반대급부로 미국이 보호하는 세계시장에서 부를 추구하는 교환관계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후 그 흐름이 유지되어 온 자민당의 1955년 체제는 당명에 써 있는 ‘자유민주’가 아니라 ‘성공한 사회주의’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있다. 말을 바꾼다면, 자민당은 특정한 철학과 이념에 바탕을 둔 ‘강령정당’이 아니라 ‘문제해결정당’의 위치를 유지해 왔다. 자민당이 미국의 공화당과 같은 전형적인 보수정당과 달리 정책이념이나 강령이 뚜렷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 태생 자체가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가들의 집단이 아니라 정치를 주도하기 위하여 입장이 다른 정치가들이 연합한 파벌의 모임이라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민당의 파벌은 과거와 같이 색깔이나 집단성에 있어서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파벌 간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고, 총재를 배출하는 파벌에 따라 국내외의 정책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말을 바꾼다면 일본에서는 정권의 교체가 정당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민당 내부에서 파벌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미국학계에서는 ‘시계추의 정치(pendulum politics)'라고 하였다. 즉, 외형적으로 볼 때는 일당독재와 유사하지만, 내부적으론 한 파벌에서 다른 파벌로 시계추, 즉 권력이 왔다갔다한다는 것이다.
시계추는 두 지점 사이를 왕복한다. 자민당 정치의 원형이야말로 앞서 설명한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라는 두 파벌이 권력을 교대로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두 대파벌은 원래 전후에 형성된 8명의 두목을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 미군정을 거쳐 양대 파벌로 형성된 것이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나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를 중심으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등이 결집한 자유당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 미키 다케오 (三木武吉) 등이 결성한 일본민주당과 경쟁하며 하나가 되어 전후의 일본을 건설하였다.
오늘날의 자민당은 파벌을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표에 제시된 대로 대개 7개의 파벌이 움직이고 있다. 이 중에서 다섯개는 자민당의 초기 양대 축인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의 계보를 잇는 파벌이고, 나머지 둘은 최근의 자민당 정치 역학에서 형성된 신흥파벌이다. 현재 자민당의 총재를 맡은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속하던 파벌의 전통을 잇는 세와카이(清和会)의 실질적인 수장이고, 그 곁에서 부총재직을 맡은 아소 다로는 같은 일본민주당 계보의 시코카이(志公会)의 수장이다. 한편 포스트 아베의 후보로 꼽히는 기시다 후미오는 자유당 계열의 전통 파벌인 고치카이(宏池会)의 회장이다.
<노다니엘>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MIT에서 비교정치경제학을 전공하며 일본전문가로 교육받았다.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시작되던 1989년 3월에 도쿄에서 연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다. 학자로서 홍콩과기대와 중국인민은행 등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컨설팅업에 종사하며 미국과 일본의 회사에서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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