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신애 대표(52)는 알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세계를 뒤흔들 거라고. 2015년 4월 봉준호 감독이 10장짜리 시놉시스를 들고 오던 날부터 영화가 완성되던 날까지. 곽 대표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는 영화잡지 '키노' 기자로 시작해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 기획마케팅실을 거쳐 바른손이앤에이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영화 '해피엔드' '여자, 정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가려진 시간' 등 개성 강한 작품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최신작 '기생충'으로 그 계획을 실현했다. '기생충'이 낸 어마어마한 기록은 한국영화 역사상 아니 세계영화 역사에서도 최초다.
"2015년 4월 봉 감독님이 '기생충'의 시놉시스를 들고 나타났죠. 다 읽고 났더니 '같이 안 해도 돼요'라는 거예요. 냅다 '제가 할 건데요?'라고 해버렸지! 시놉시스만 봤는데도 빈부에 관한 주제 의식이며 재미, 의미 모두 갖췄거든요.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은 가겠다 생각했죠!"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겠다고 자신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대상인 데다가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AMPAS 회원의 투표가 필요하기 때문. 따라서 지금까지 외국영화가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력이 없었다.
"예측한 건 아니고 희망 사항이었죠. 현지에서는 정말 인기가 뜨거웠는데, 봉 감독과 송강호 선배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현빈 정도! 하하하. 시상식에 앉아있으면 다들 사진 찍자고 찾아와서 봉 감독이 물 한잔 마시기까지 40분이 걸리더라고. '나 아카데미 회원이야! 당연히 너희를 찍었어!'라고 대놓고 말하는 분들도 참 많이 만났고…. 점점 '이러다 진짜 받는 거 아니야' 했는데 웬걸. 그 인기 많던 (오스카 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은 '1917'이 타는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샘 멘데스 감독의 '1917'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대결 구도가 좁혀졌다. 곽 대표는 "한 매체의 기사 한 덩어리가 딱 내 심정"이라며 당시 읽은 기사의 구절을 읊었다.
"'1917'의 수상은 오스카의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은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그 문장이 굉장히 공감 갔어요. 전통과 변화의 선택으로 보여지더라고요."
오스카 캠페인 당시 관계자는 곽 대표에게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하면 상영 극장 수가 2000개로 늘어난다"고 예고했다. "설마"하고 웃었지만, 그 일은 실제가 됐다.
"캠페인 시작할 때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만 돼도 극장 수가 1000개 돼요. 상을 받으면 2000개가 되죠' 하더라고. 상상이 잘 안 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할리우드 영화 그중에서도 오스카 레이스를 달리는 작품은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니에요. 다양성·특별함에 더 주목하고 있거든요.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는 작품들을 주목받게 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기생충'은 지난해 5월, 국내 상영만으로도 이미 투자금 이상을 회수했다. 거기에 해외 유수 영화제를 거쳐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까지 품으며 현재 북미 흥행 수익 5000만 달러(약 607억원)를, 월드와이드 흥행 수익은 2000억원이 넘는다.
"어디에서 17배 수익이 났다고 보도됐는데…외부에서 생각하는 만큼 엄청난 수익이 난 건 또 아니에요. 하하하. 수치로 나온 건 '기생충'의 총 수익이지 우리 회사의 수입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반은 그 나라의 극장이 가져가는 거예요. 배급 수수료에 홍보비 등도 빼고요. 매출은 허상이에요. 결국 가장 큰 수익을 누리는 건 우리 영화를 먼저 알아봐 준 사람들인 거죠. 먼저 산 사람!"
곽 대표는 영화보다 소설을 더 사랑하던 '문학소녀'였다. 영화에 관한 로망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는 그의 말에 재차 "진짜냐"고 반문하게 되는 건 아마 그의 가족들이 한국 영화계 한 획을 그은 대표 영화인이기 때문일 거다.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자 영화 '해피엔드' '침묵' 정지우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곽 대표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영화잡지 '키노' 입사 후였다"고 고백했다.
"국문학을 전공해서 취직도 출판사로 했어요. 그러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로 이직했고 정성일 평론가(전 '키노' 편집장)와 만나게 됐죠. '키노'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해서 합류했는데 아…. 그때 정말 많은 영화를 봤어요. 1년간 창간호를 준비하며 대학원 다니듯 공부한 거 같아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
영화 '기생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곽 대표지만 '여성 영화인'으로 사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넘어지고 깨지며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기를 몇 차례. 그는 더욱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첫애를 낳고 (영화 한 걸) 후회한 적이 많아요. '엄마가 국어 선생님이 돼야 한다고 했는데…그 말을 들었어야 했어!' 하하하. 산후조리할 때부터 눈물이 줄줄 나더라고요. 항상 전전긍긍했던 거 같아요. 유치원에 가장 늦게 아이를 찾으러 가는 엄마가 되고…. 그런 세월을 지나 지금은 (아이가) 어엿한 성인이 돼서. 하하하."
누구보다 곽 대표의 마음을 잘 아는 '영화인', 가족들의 응원도 곽 대표의 원동력 중 하나다.
"오빠(곽경택 감독)는 엄청나게 응원해주는 타입이죠. 주변에 '걔가 이 업계에서 묵묵히 30년 버텨 받은 상'이라 말하면서 정작 제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남편(정지우 감독)은 상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영화를 잘 만든 것'을 즐거워했고요."
곽 대표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움직이는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한국영화계 좋은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까지 보면 5편은 여성 감독, 제작자의 작품이었죠. 주목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 창작자들과 스쳐 가는 작품이 아닌 오래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곽신애 대표에게 또 한번 봉 감독과 재회할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글쎄요? 서로 함께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계예요. 큰 실수 안 하고 '선 넘지 않으면' 다음 한국 영화를…아마도?!"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는 영화잡지 '키노' 기자로 시작해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 기획마케팅실을 거쳐 바른손이앤에이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영화 '해피엔드' '여자, 정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가려진 시간' 등 개성 강한 작품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최신작 '기생충'으로 그 계획을 실현했다. '기생충'이 낸 어마어마한 기록은 한국영화 역사상 아니 세계영화 역사에서도 최초다.
"2015년 4월 봉 감독님이 '기생충'의 시놉시스를 들고 나타났죠. 다 읽고 났더니 '같이 안 해도 돼요'라는 거예요. 냅다 '제가 할 건데요?'라고 해버렸지! 시놉시스만 봤는데도 빈부에 관한 주제 의식이며 재미, 의미 모두 갖췄거든요.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은 가겠다 생각했죠!"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겠다고 자신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대상인 데다가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AMPAS 회원의 투표가 필요하기 때문. 따라서 지금까지 외국영화가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력이 없었다.
"예측한 건 아니고 희망 사항이었죠. 현지에서는 정말 인기가 뜨거웠는데, 봉 감독과 송강호 선배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현빈 정도! 하하하. 시상식에 앉아있으면 다들 사진 찍자고 찾아와서 봉 감독이 물 한잔 마시기까지 40분이 걸리더라고. '나 아카데미 회원이야! 당연히 너희를 찍었어!'라고 대놓고 말하는 분들도 참 많이 만났고…. 점점 '이러다 진짜 받는 거 아니야' 했는데 웬걸. 그 인기 많던 (오스카 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은 '1917'이 타는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샘 멘데스 감독의 '1917'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대결 구도가 좁혀졌다. 곽 대표는 "한 매체의 기사 한 덩어리가 딱 내 심정"이라며 당시 읽은 기사의 구절을 읊었다.
"'1917'의 수상은 오스카의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은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그 문장이 굉장히 공감 갔어요. 전통과 변화의 선택으로 보여지더라고요."
오스카 캠페인 당시 관계자는 곽 대표에게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하면 상영 극장 수가 2000개로 늘어난다"고 예고했다. "설마"하고 웃었지만, 그 일은 실제가 됐다.
"캠페인 시작할 때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만 돼도 극장 수가 1000개 돼요. 상을 받으면 2000개가 되죠' 하더라고. 상상이 잘 안 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할리우드 영화 그중에서도 오스카 레이스를 달리는 작품은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니에요. 다양성·특별함에 더 주목하고 있거든요.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는 작품들을 주목받게 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기생충'은 지난해 5월, 국내 상영만으로도 이미 투자금 이상을 회수했다. 거기에 해외 유수 영화제를 거쳐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까지 품으며 현재 북미 흥행 수익 5000만 달러(약 607억원)를, 월드와이드 흥행 수익은 2000억원이 넘는다.
"어디에서 17배 수익이 났다고 보도됐는데…외부에서 생각하는 만큼 엄청난 수익이 난 건 또 아니에요. 하하하. 수치로 나온 건 '기생충'의 총 수익이지 우리 회사의 수입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반은 그 나라의 극장이 가져가는 거예요. 배급 수수료에 홍보비 등도 빼고요. 매출은 허상이에요. 결국 가장 큰 수익을 누리는 건 우리 영화를 먼저 알아봐 준 사람들인 거죠. 먼저 산 사람!"
곽 대표는 영화보다 소설을 더 사랑하던 '문학소녀'였다. 영화에 관한 로망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는 그의 말에 재차 "진짜냐"고 반문하게 되는 건 아마 그의 가족들이 한국 영화계 한 획을 그은 대표 영화인이기 때문일 거다.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자 영화 '해피엔드' '침묵' 정지우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곽 대표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영화잡지 '키노' 입사 후였다"고 고백했다.
"국문학을 전공해서 취직도 출판사로 했어요. 그러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로 이직했고 정성일 평론가(전 '키노' 편집장)와 만나게 됐죠. '키노'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해서 합류했는데 아…. 그때 정말 많은 영화를 봤어요. 1년간 창간호를 준비하며 대학원 다니듯 공부한 거 같아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
영화 '기생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곽 대표지만 '여성 영화인'으로 사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넘어지고 깨지며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기를 몇 차례. 그는 더욱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첫애를 낳고 (영화 한 걸) 후회한 적이 많아요. '엄마가 국어 선생님이 돼야 한다고 했는데…그 말을 들었어야 했어!' 하하하. 산후조리할 때부터 눈물이 줄줄 나더라고요. 항상 전전긍긍했던 거 같아요. 유치원에 가장 늦게 아이를 찾으러 가는 엄마가 되고…. 그런 세월을 지나 지금은 (아이가) 어엿한 성인이 돼서. 하하하."
누구보다 곽 대표의 마음을 잘 아는 '영화인', 가족들의 응원도 곽 대표의 원동력 중 하나다.
"오빠(곽경택 감독)는 엄청나게 응원해주는 타입이죠. 주변에 '걔가 이 업계에서 묵묵히 30년 버텨 받은 상'이라 말하면서 정작 제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남편(정지우 감독)은 상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영화를 잘 만든 것'을 즐거워했고요."
곽 대표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움직이는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한국영화계 좋은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까지 보면 5편은 여성 감독, 제작자의 작품이었죠. 주목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 창작자들과 스쳐 가는 작품이 아닌 오래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곽신애 대표에게 또 한번 봉 감독과 재회할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글쎄요? 서로 함께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계예요. 큰 실수 안 하고 '선 넘지 않으면' 다음 한국 영화를…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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