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온천장·해운대·화명신도시 '길고 긴 터널'…부산의료원엔 희망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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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김용우·최재호 기자
입력 2020-03-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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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이후 4주째 접어든 주말 부산 곳곳 '이그러진 일상'

집단 감염 발생한 온천교회 = 지난 2월21일 첫 확진자가 들렀던 부산 동래구 온천교회. 이 교회 신도 가운데 지난 7일 77세 여신도가 양성 판정을 받아 모두 32명이 확진됐다. 8일 현재 부산지역 확진자는 89명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1일 처음으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가 들른 곳으로 확인된 온천교회. '부산마저 뚫렸다'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이곳을 끼고 있는 부산 중심 상권의 한 축인 동래 온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튿날 16명, 그 다음날 38명 등 기록적인 확진자 현황이 속속 전해지면서 부산시민들의 공포감은 신천지 집단 전파로 '패닉'에 빠진 대구·경북지역 못지 않은 상황으로 치달았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4주째에 접어드는 지난 주말을 맞아 둘러본 부산지역 곳곳은 이미 시민들의 일상이 무너진 채 '길고 긴 터널' 현장을 보는 듯했다.

지난 2월21일 첫 확진자가 들른 곳으로 알려진 뒤 20일이 지난 최근까지도 썰렁한 메가마트 동래점 모습. 오른쪽은 온천장 '허심청' 입구에서 열감지 카메라로 방문객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 [사진=최재호 기자]

7일 부산 동래구 온천장 입구에 자리잡은 온천교회 앞. 교회 앞 태국 전문 레스토랑을 비롯해 주변 일대 많은 음식점들이 여전히 휴업중이어서 '진원지'의 충격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곳과 수백m 채 떨어져 있지 않은 온천장 중심 상권은 평일에도 보기 힘든 적막감으로 축 처져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예부터 온천으로 유명해 지역명으로 이어진 이곳의 랜드마크로 일컬어지는 온천종합위락센터 '허심청'은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로 발열 입장객을 걸러내는 방법으로 근근이 정상 영업을 끌어가고 있었다. 바로 옆 이른 바 '물 좋기로 유명하다'는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의 휴업 안내문도 일제히 나붙어 있다.

시중 일반 약국보다 값싸게 살 수 있다고 여겨 먼곳에서도 찾는 온천장 3~4곳 대형 약국에는 혹여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을까하고 기웃기웃하는 시민들이 눈에 띄였지만, 이날도 판매 20분 만에 미리 줄서 있던 방문객들에게 다팔렸다.

첫 확진자가 들른 것으로 판명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동래 메가마트는 3주째가 넘은 현재까지도 시민들의 마음 속 '데스노트'(살생부)에서 지워지지 않은 듯했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주차 공간을 찾기 힘들었던 이곳은 7일 낮에도 야외 주차장에도 많이 비워져 있는 상황이었다.

주말 나들이 삼아 자주 찾는 해운대 찜질방과 온천센터도 집단 감염을 우려,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달맞이 '힐스파'와 해운대구청 앞 '해운대온천센터', 송정 '해수락' 등이 기약없는 휴업 안내문을 내걸어 놓은 모습이었다.

금요일인 지난 6일 저녁 화명동 수정마을 '먹자골목' 모습. 왼쪽은 꽤 맛집으로 알려져 있지만 텅빈 돼지갈비집. [사진=김용우 기자]

지난 6일 이른바 '불금' 오후 6시 부산 북구 화명동 수정마을. 부산의 '핫' 주거지역인 화명신도시의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이곳은 을씨년스런 거리를 단골 씬으로 하는 좀비영화 한컷처럼 적막했다.

"손님(매출)이 20%로 줄었어예. 정말로 죽겠심니더." 60평 남짓 꽤 너른 가게에서 저녁 아르바이트생까지 예닐곱명이 바쁜 일손을 놀렸던 돼지갈비집의 사장은 요즘 직원 아줌마 한명과 둘이서 일을 쳐내고 있다. 눈치 빠른 아르바이트생들은 2주 전부터 한 둘씩 안나오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되더란다.

섭씨 8도 꽤 쌀쌀한데도 그나마 찾아온 손님들이 공기가 갇힌 실내보다 가게 밖 야외테이블을 고집한 것은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풍경이다. “맛도 품질도 아니고 바로 이놈 때문에 힘들어져 행여나 기대했는데…" 건물주는 ‘월세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 했다. 사장은 “그래도 문닫지 않고 버티면 좋은 날 다시 오겠지예”라고 했다.

인근 30여곳 식당 중 10여곳은 이날 하얀 백지에 쓰린 속으로 눌러 쓴 글씨를 내걸고 임시휴업중이었다. 문을 연 식당도 하루 비용을 빼면 닫는 것이 더 실익이 있다고 셈하는 업주들도 있었다.

7일 오전 '코로나19' 국가지정병원으로 지정돼 있는 부산의료원으로 가는 길. 목적지를 말하자, 자리에 앉기 무섭게 묻지도 않은 택시기사의 ‘대답’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다.

거친 숨과 소리를 내뱉는 탓에 택시기사의 안경알이 한겨울 서리 낀 유리창처럼 되기를 반복했다. “조선 임금들은 성군 폐군 할 것없이 나라의 재앙을 자신의 부덕함으로 돌리고 한탄하고 신하들에게 사죄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그 다음은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손님이란 것 잊고 마구 뱉은 말이 부담됐던지 “정부를 잊고 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맺었다.

부산지역 공공병원으로 '코로나19' 치료의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부산의료원에는 시민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의료진은 물론 병원직원, 전투복을 방불케하는 복장을 하고 의료폐기물 뒷처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해달라는 도시락, 과일, 빵과 음료수, 손편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시민이 첫 전화를 걸어와 “선물 보내도 되냐”고 물은 뒤 배달업체를 통해 감귤과 떡, 두유 등을 보낸 것은 지난달 28일 풍경이다.

지난 3일에는 의료원 1층에 30대로 보이는 남녀가 찾아와 “고생하는 의료진이 먹고 힘냈으면 좋겠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선물꾸러미만 남기고 사라졌다. 과일 도시락과 초콜릿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뉴스에서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힘내세요’라는 손 편지도 함께.

부산의료원 감염관리과의 한 간호사는 “의료종사인으로 당연히 하는 일인데 이런 인사를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신종 감염병이라 무섭긴 해도 ‘고생한다’는 시민의 응원에 힘이 난다”고 흐뭇해 했다.

한편, 부산에서는 7일에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임신부(38)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면서, 누적 확진자는 모두 89명으로 늘어났다. 이날 함께 확진 판정 받은 77세 여성은 집단감염이 발생한 온천교회 신도로 앞서 확진을 받은 48번 환자의 부인이다.

부산 확진 추세는 지난달 29일 8명에서 3월들어 1일 2명, 2일 3명, 3일 3명명, 4일 2명, 5일 1명, 6일 2명, 7일 2명 등 일주일째  다행스럽게 주춤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부산지역 코로나19 확진자는 국가지정병원인 부산의료원에 58명이 입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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