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자산 투심 악화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추락하는 상황에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고 통화 부양책을 내놓았다간 자본유출이 가속하고 통화가치가 더 떨어지는 역풍이 불 수 있어서다.
당초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둔화에 대응해 미국이 주도하는 금리인하 대열에 합류해 통화완화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돼왔다. 그러나 유가 폭락이 신흥국 통화가치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피치솔루션의 세드릭 체햅 글로벌 전략가는 9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한편으로 큰 폭의 통화가치 하락에, 다른 한편으론 성장둔화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리를 내렸다간 자본유출을 부추기면서 통화가치를 더 떨어뜨릴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지켜보자니 성장악화가 불가피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많은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당분간 이런 정책 딜레마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그는 덧붙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국제유가 결정권을 둘러싼 치킨게임을 시작하면서 신흥국 통화는 직격탄을 맞았다. 9일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미국 달러를 상대로 6% 넘게 추락했다. 중남미 산유국 통화가치도 박살이 났다. 멕시코 페소가 달러 대비 5% 미끄러지며 3년 만의 최저로 곤두박질쳤다. 콜롬비아 페소 가치는 역대 최대폭인 6.29% 고꾸라졌고, 브라질 헤알은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에도 2% 미끄러졌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1% 밀려났다.
일각에선 유가 하락이 원유 순수입국인 중국이나 인도 경제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그러나 미즈호증권의 비쉬누 바라탄 전략가는 "유가 폭락으로 신용 리스크가 증가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는 상황을 감안할 때 그 어떤 국가라도 유가 하락을 호재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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