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글로벌 선박 규모 확대는 국제경제 상황과 맞닿아 있다. 유럽의 대형 선사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가격이 하락한 틈을 노려 선박 발주를 확대했다.
각국의 정책금융기관에선 낮은 금리의 선박 대출을 중개했고, 글로벌 선사들은 호황기에 축적한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해외 선진국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공격적 투자를 해온 것과 달리 국적 선사들은 2008년 이후 여전히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여유자금이 있어도 국내 조선해운산업에 자금을 대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큰 원인이다. 선박 건조에 많은 자금이 소요됨에도 불구, 투자금 회수에는 장기간이 소요돼 이익 환원에 대한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박에 대한 돈줄이 막혀 있으니, 국적 선사나 조선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파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박건조와 발주, 중고선 매입 비용 등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넘을 정도로 고액이다. 때문이 아무리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우량 선사라도 자기 자본금만으로는 충당하는 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국내외 투자자를 유치해 펀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유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선박금융’은 융자 기간이 최대 10년 이상 소요되기에 민간투자만으로 운용하기 힘들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정부가 선박금융에 물꼬를 트게 된다. 당시 조선장려법을 제정,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50%, 정부 40%(보조금 형태), 선사 자기자본 10%를 통해 신조(신규 선박건조)가 이뤄지게 했다. 이자율마저 안정적이라 당시엔 민간은행과 종금사, 리스사 등이 뛰어들어 1997년 IMF 외환위기까지 선박금융은 활황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을 기점으로 민간금융사들은 선박금융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파산 과정에서 드러난 선순위 저당권 처리 문제점이 결국 선박금융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데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한진해운 사태는 해운업 전반에 대한 금융권의 불신을 증폭시킨 계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 “양대 선사였던 한진해운의 파산은 우리나라의 해양강국 지위마저 흔들리게 했고 당시 해운산업 전반의 매출이 10조원 이상 증발했다”고 전했다.
업황에 대한 불신은 결국 선박금융 규모 축소로 이어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민간은행의 선박금융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 3조7129억원에서 2014년 8749억원, 2018년 1400억원으로 급감했다.
◆민간주도 선박금융 10% 남짓...관행적 기피현상 타개해야
다행히 고무적인 것은 정부가 한진해운 사태를 교훈 삼아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선박금융을 사실상 책임지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그해 8월 출범하게 된다. 법정자본금만 5조원 규모의 대형 공사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은행의 선박금융 비중이 여전히 10% 미만이란 점이다. 사실상 공적 금융기관이 90% 이상을 책임지는 체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금융권 내부에서도 국내 시중은행의 선박금융 기피 현상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2014년 말 기준 선박금융을 취급했던 국내 시중은행의 총 자산이 1806조3074억원에 달하는 반면 선박금융 대출잔액은 3조6823억원으로 0.2%에 불과하다. 지금보다 두배 가량 대출을 늘려도 은행의 건전성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민간 금융업계가 선박금융에서만 매우 보수적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무엇보다 금융사가 리스크 걱정을 줄이고 조선·해운사에 여신을 공급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선박금융에 참여하는 금융사도 후순위 대출에 참여할 뿐 소극적이다. 그간 만연했던 선박금융 기피 현상을 타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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