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공천 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여성, 청년을 우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거를 약 9개월 앞둔 지난 해 7월 여성과 청년, 노인, 장애인 등에 최고 25%의 경선 가산점을 부여하고 정치 신인에게 20%의 경선 가산점을 부여하는 내용의 '시스템 공천룰'을 정했다.
민주당은 이 가산점으로 정치신인들이 곳곳에서 경선 승리하고 현역 의원들이 탈락하는 '이변'이 속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역들의 기득권이 공고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민주당 129명의 의원 가운데 이번 총선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08명이다. 이중 91명의 현역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아직 공천이 결정되지 않은 4곳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현역 공천률이 84.3%다. 남은 4곳에서 모두 현역 의원들이 공천을 받으면 현역 공천률이 88%에 이른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20% 의원들에게 경선에서 불이익(감산 20%)을 주기로 했지만 해당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정치신인들의 유입이 저조했다. 경선에서 패배한 현역 의원은 유승희·신경민·심재권·이종걸·이석현·이춘석·손금주·권미혁·정은혜 등 9명인데, 이들을 상대로 승리한 후보는 단 하나 예외없이 50대 남성들이다. 여성, 청년에 대한 우대 조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인재영입 케이스나 청와대 출신들을 제외하면 여성, 청년 후보들은 대개 사지(死地)에서 공천을 받았다. 영입 인재와 청와대 출신을 제외하고 공천을 받은 청년(만 45세 이하)은 모두 3명인데, 대구 동갑의 서재헌(41) 예비후보, 대전 동구의 장철민(37) 예비후보, 경북 경주의 정다은(34·여) 예비후보 등이다. 이들이 출마하는 지역구는 모두 미래통합당의 당세가 강한 지역이다.
현재 29명의 여성 후보가 공천을 받은 상태인데 이 가운데 현역의원이 14명, 청와대 출신이 3명, 영입 인재가 5명이다. 당에서 경력을 쌓은 여성 정치인은 7명 뿐이다. 민주당은 당헌당규로 여성 30% 의무 공천을 규정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대신 눈에 띄는 것은 86그룹 남성들의 약진이다. 226명의 공천자 가운데 86그룹 남성이 129명이다. 과반을 훌쩍 넘어선다. 이 가운데 현역 의원이 50명이다. 4선의 최재성·조정식·안민석·송영길 의원, 3선의 이인영·윤호중·우상호·김태년·안규백·김영춘·정성호 의원, 재선의 홍익표·전해철·이원욱·윤관석·박홍근·박완주·박범계·민홍철·김민기·김경협 의원 등이다. 이들은 모두 경선없이 단수 공천을 받았다. 재선 이상 1960년대생 남성 가운데 공천을 받지 못한 건 이춘석 의원(3선)이 유일한데, 이 의원은 당 주류인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한 당 관계자는 "감동도 의미도 없는 당신들을 위한 공천이 됐다"며 "봄을 이기는 겨울이 없듯이 국민을 이기는 공천은 없다. 국민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개혁공천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싸울 줄 아는 친문들만 공천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신 교수는 "역대 선거를 보면 현역 의원 교체율이 높은 쪽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박근혜 정권 때 친박 공천에 집착했는데, 실제적으로 그것이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는 게 증명됐다.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얻은 게 적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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