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베트남 관련 뉴스에 대한 댓글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한-베 관계의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베트남의 한국인 전격 입국금지 조치에 많은 한국인들이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열악한 의료시설에 코로나 확산을 걱정하는 베트남 정부는 이해가 되지만 명확한 기준을 갖고 한국인을 시설격리 또는 자가격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여파에 최근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수년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최대 교역량을 매년 경신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양국 관계가 이대로 가다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 내 베트남 관련뉴스에는 유독 베트남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아지고 있다. 베트남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이었던 국내여론이 급반전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투자를 준비중인 국내 한 기업인은 “베트남의 전격적인 한국인 입국금지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양국의 관계가 그동안 너무 좋았던 탓에 한국에게는 특별한 조치가 없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기업인은 “베트남에 2차 투자를 하기 위해 곧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베트남 왕래가 어렵게 됐다”며 “2차 투자를 중지를 결정했고 현재 투자한 공장도 감축 경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이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은 중단됐다. 사실상 양국의 인적교류가 중단된 상태다. 아직까지는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을 경유하면 베트남에 입국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베트남 항공 등에 따르면 한국과 베트남의 양국의 항공 노선은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2달간 운휴를 결정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 또한 한시적인 결정이라며 상황에 따라 변수가 있다. 베트남 정부 방침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FDI 전년比 23%↓, “한국발 관광·투자 앞으로 속단하기 힘들어”
베트남에서 10년째 여행사를 운영중인 에픽투어의 윤수광 대표는 “코로나가 불거진 2월 이후 사실상 한국인 손님은 제로 상태에 가까웠지만 실상은 코로나가 풀려도 베트남 관광 열기가 쉽게 올라오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하노이 딩톤 거리에서 한국호텔을 운영중인 A씨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호텔은 이미 직원을 줄이는 등 감원경영에 나섰다”며 “일부 호텔 업주들은 주요 매물을 처분하는 등 향후 경기에 대비해 귀국을 준비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현지의 한 기업인은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라 한국사람들이 이제 베트남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두고 베트남 정부가 언제든지 위급상황이 생기면 빗장을 걸어 잠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베트남을 신남방 교두보로 보면서 거품 투자도 사실 많았다. 이번을 계기로 열기가 상승하던 한국발 투자가 하향곡선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베트남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삼성전자는 코로나 여파에 이재용 부회장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지난달 29일로 예정된 삼성 R&D센터 기공식마저 당분간 보류하기도 했다.
베트남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2월 베트남의 FDI(해외직접투자)는 코로나 여파에 전년 대비 23%이상 하락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이 입국을 중단한 중국과 한국의 베트남 FDI는 11.1%와 6.6%로 대폭 줄었다. 지난해 중국과 한국의 베트남 FDI는 전체에서 4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위상이 독보적이었다.
◆베트남 교민사회도 ‘고립감’ 확산...항공노선 장기 중단 시 의료공백 우려도
하노이 한인밀집지역인 미딩 한 아파트의 교민은 “우리 아파트에만 50세대가 자가격리 초지를 받았다며 하루 5차례 이상 코로나 관련 주의 방송이 한국어로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교류도 끊어지면서 혼자 지내는 교민들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초기 섬유관련 업계 진출에 따라 유독 대구·경북·부산 출신 교민들이 많다. 베트남 정부가 이번에 대구·경북 지역을 가장 먼저 입국금지 조치하면서 현지의 베트남 교민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켰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장기간의 한국과 베트남의 통행 중단 시 베트남 교민들의 의료공백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민들은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받아왔다. 치과 치료부터 정기건강검진까지 그 분야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이제 대다수 교민들은 베트남의 의료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해야할 판이다. 물론 베트남에서도 가능하지만 대다수 베트남 교민들이 원하는 의료서비스의 경우 대부분 베트남 공공의료가 아닌 고급병원에서만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베트남의 공공의료를 제외한 고급병원들은 일반내과 등 간단한 의료서비스마저도 의료 수가가 상당히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는 것이다.
하노이에 10년째 거주한다는 한 교민은 “1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한국에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받아왔지만 올해는 힘들 것 같다”며 “우선 가격이 비싸더라도 베트남의 외국계 병원에서 지병(당뇨)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교민은 “특히 노령의 교민들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며 “문제는 비용 대비 베트남 내과의 수준이 낮아 국내만큼 효율적인 치료가 어렵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노령의 교민들에게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한국-베트남, 기업인 우선 입국허용방안 추진 중”
‘코로나 음성’ 확인증 소지 시 14일 시설격리 제외 대상 요청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우선 베트남 정부와 기업인의 입국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발 입국을 제한한 국가 가운데 베트남을 포함해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터키, 쿠웨이트,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등 한국과 경제 교류가 활발한 나라에 대해 기업인 출장은 허용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당장은 건별로 기업인 출장 허용을 요청하는 상황이지만, 출국 전 코로나19 음성 확인증 등 검역 강화로 상대국을 안심 시켜 기업인 입국허용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앞서 삼성디스플레이의 베트남 현지 사업장 엔지니어 투입문제로 불거졌다. 삼성디스플레이에 따르면 700여명의 엔지니어를 베트남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모듈 생산라인 개조에 투입해야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14일 격리방침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박노완 주베트남 대사는 지난주 하노이에서 현지 매체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삼성디스플레이 엔지니어 수백 명이 베트남에 신속히 입국하지 않으면 베트남 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7000여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있는 만큼 외교부는 베트남을 중점 교섭대상국으로 정하고 협상을 가시화하고 있다. 기업인 우선 입국에 관련해 이미 한두 국가들은 기업 출장을 허용하는 등 일부 성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만 정부는 예외적 조치가 너무 부각될 경우 상대국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가급적 조용히 교섭하고 있다”면서 “건강상태 확인서를 소지한 주요 기업인의 입국을 우선 허용하도록 베트남 등 상대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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