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위 선사의 속절없는 좌초에 조선해운업계의 위기감은 증폭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재무구조를 탄탄히 받쳐줄 선박금융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선박금융의 현실은 좀처럼 미덥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이 90% 이상 돈줄을 쥐고 있어 민간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자금 동원력이 여의치 않다보니 업황이 나빠질수록 제2, 제3의 흥아해운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전체 선박금융의 91%가 국책기관...민간투자 태부족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선박금융 4조1000억원(2015년 기준) 중 91%인 3조7000억원을 국책금융기관이 제공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마저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지난해 부산해양금융 컨벤션에 참석해 민간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당시 윤 원장은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는 정책금융의 중요성은 앞으로 계속 유지되겠지만, 변화하는 해양 환경과 규제 하에 늘어나는 선박금융의 수요를 정책금융만으로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민간 시중은행의 선박금융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도 쉽지 않다. 통상 자금회수에 십수년이 걸리는 선박금융 투자에 리스크 감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글로벌 규제 강화로 도입된 ‘바젤Ⅲ’ 등으로 인해 민간 시중은행은 리스크 높은 대출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선박금융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의 상황을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정부 주도로 기금과 펀드를 조성하고, 민간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일본, 정부 앞장서서 기금 조성...민간투자 유도
실제로 중국 정부는 2009년 해운산업 지원을 위해 ‘선박산업투자기금’을 최초 자본금 29억5000만 위안(약 4990억원) 규모로 설립했다. 이 기금은 민간업체의 참여 등으로 200억 위안(약 3조3830억원) 상당으로 조성됐다. 정부 주도로 기금과 펀드를 조성해 선박금융 역할을 맡긴 것이다. 같은 시기 중국에선 민간 사모펀드가 주도한 50억 위안(약 8458억원) 규모의 ‘항운산업기금’이 조성된 점도 관련 산업 육성에 한몫을 했다.
일본은 2012년 일본선박투자촉진(Japan Ship Investment Facilitation Co., Ltd; 이하 JSIF)을 설립했다. 중소 선주집단 자금과 국책금융기관 자금을 공동으로 투입해 기금을 마련한 것. 이후 2014년 일본 조선산업이 활황세를 이어가자, 일본 정부는 JSIF의 설립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 자연스럽게 해산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일본 같은 해운업 발전 기금이 없다는 점이다. 금융권과 조선·해운업계는 정부가 앞서서 해운발전기금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특별법을 설립, 기금의 설립과 운영·관리를 법률에 근거토록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일각에선 선박리스를 활용한 금융지원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금융리스회사에 융자를 통해 자국 조선해운업을 지원토록 했다. 중국 리스업체는 선박을 직접 발주한 뒤 이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동시에 해운기업의 자금 유동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그 결과 2017년 3월 말까지 중국 선박리스업체가 보유한 선박은 989척, 자산잔액은 1139억 위안(약 19조2662억원)에 달했다.
해운업계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려면 해운공제조합 설립도 필요하다. 앞서 한진해운 사태처럼 개별 기업이 재정난에 빠지면, 정부나 국책금융기관(산은) 등의 지원 외엔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해운공제조합이 설립된다면 자체 자금을 동원할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해운공제조합은 평시엔 시중은행 등에 보증을 진행하고, 시중은행은 이를 근거로 조선해운사에 대한 대출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았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조금씩 국내 금융사들이 신규 선박 건조를 위한 선박금융에 참여하고 친환경 설비개량 대출에도 힘을 보태고 있기는 하다”면서도 “중국 일본의 선박금융 사례를 제대로 벤치마킹 하려면 우리 금융당국이 필요한 지원책과 제도를 마련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