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에도 안 쓴 회사채 매입 카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에 들어갔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회사채시장에서는 비상기구인 프라이머리마켓 기업신용기구(PMCCF)와 세컨더리마켓 기업신용기구(SMCCF)를 새로 만들어 지원하기로 했다. 프라이머리마켓은 발행시장, 세컨더리마켓은 유통시장을 뜻한다.
연준은 발행시장에서 4년 한도로 브릿지론을 제공하고, 유통시장에서는 투자등급 우량 회사채와 ETF 시장을 사겠다고 했다. 다만 투기등급 회사채는 빠졌다. 개별 회사채는 전체 물량에서 10%까지, ETF는 20%로 보유 제한을 걸었다.
유동성이 가장 큰 회사채 ETF인 LQD와 VCIT로 돈이 몰리고 있는 이유다. SMCCF가 ETF 매입에 나서면 두 상품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 월가에서는 보고 있다. 뱅가드가 굴리는 단기채 ETF인 VCSH와 아이쉐어즈 단기채 ETF인 IGSB도 사들일 수 있는 대형 ETF로 꼽힌다.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는 대부분 투기등급(정크) 바로 위인 BBB 이상에 몰려 있다. 이런 회사채가 투기등급으로 떨어진다면 중앙은행도 신용위험에 빠진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는 얼마 전 미국 셰일오일업체인 옥시덴탈페트롤리엄 회사채를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강등했다.
◆유동성 개선 기대…역부족 시각도
무제한 양적완화가 회사채시장 유동성을 개선해줄 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제한적인 효과에 그칠 거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회사채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투자등급이나 투기등급을 가릴 것 없이 패닉에 빠졌었다. 연준이 매물을 받아줄 매수자로 나서지 않았다면 분위기 반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회사채 개별 매입을 제외한 데 주목한다. 대신 ETF 사들여 회사채시장을 전반적으로 떠받치기로 했다. 채권을 개별적으로 사들이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단일 ETF가 담는 회사채는 수천 개에 달하기도 한다. ETF 시장 자체도 빠르게 안정을 찾을 걸로 보인다.
물론 희의론도 있다. 애초 거래가 많지 않아 퇴출될 처지에 놓였던 ETF까지 연준에서 사들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미국 국채와 고수익을 제시하는 하이일드채권 간 금리 격차는 얼마 전 10.0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이를 두고 고수익채권 부도율이 연내 13%대로 뛸 걸로 내다봤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BBB등급 채권이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의 50% 내외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BBB등급까지 매입 대상을 확대한 것은 A급으로만 한정했던 CP 매입 프로그램보다 정책 실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의 회사채 시장의 불안은 통화정책과 유동성 공급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2000억 규모의 회사채 매입으로는 시장의 불안을 떨쳐 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면서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잔액은 8조 달러의 규모이고, 연간 1조원 내외가 발행되고 있어 시장 정상화가 지연된다면 매입규모 확대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번 정책에서 아쉬운 점은 최근 채권시장의 뇌관이 되괴 있는 레버리지론과 하이일드 채권시장에 대한 대책이 부재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처럼 직접적인 자산 매입 방식이 아닌 기구를 통한 매입이라는 한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채 직접 매입은 의회를 통한 연준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회적인 기구 설립을 통해 회사채 시장에 신속하게 개입하고자 한 연준의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자체만으로 시장의 안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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