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보수·낙관적 시각 벗고 극약처방···'2월 실기론' 극복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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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모·윤동 기자
입력 2020-03-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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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매조건부채권 매입제도 4~6월 운영

  • 금융계 "환영"···자금조달 시장도 활기

'2월 실기론'에 휘말렸던 한국은행이 뒤늦게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나선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활용하지 않았던 무제한 유동성(자금) 공급 조치마저 꺼내 들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이날 조치를 놓고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추진하는 양적완화 조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선언했다. 시장의 예상보다 과감한 조치를 통해 사태 인식이 안일하다는 비판을 피해가려는 모습으로 분석된다.

26일 한은이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제도를 다음달부터 6월까지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금융기관이 원하는 만큼 무제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미다. 한은 내부에서도 실제 얼마만큼의 유동성이 추가로 공급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야말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조치다.

이는 이전까지 다소 보수적·낙관적이었던 한은의 자세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제 한은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결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코로나19 충격이 3월에 정점을 기록한 후 차츰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이후 일주일 만인 이달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0.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면서 한은의 기존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15일(현지시간)에는 미 연준이 추가 금리 인하 카드를 활용하면서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낮췄다. 이를 전후로 일본 중앙은행과 영국 영란은행,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잇달아 특별 성명을 발표하면서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 역시 지난 16일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해 주요국과 공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한발 앞서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면 국내 금융시장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실기(失期)론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임시 금통위 직후 설명회를 통해 "기준금리 인하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난달보다 이번달이 적기였다"고 실기론을 정면 반박했으나 그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이끌고 있는 이동걸 회장은 지난 20일 "한은이 아직까지도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좀 안일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해 대처가 뒤늦었다고 꼬집었다.

실기론에 대한 비판 외에 최근 정부의 대응 수준도 한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활용했던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24일 발표했다. 정부도 금융시장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면서 한은도 보수적·낙관적 시각에서 벗어나 강경한 조치를 활용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사상 초유의 조치를 통해 그동안 시달렸던 실기론을 극복하려는 것 같다"며 "자신들의 사태인식이 안일하지 않았다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마진콜(증거금 추가 요청) 문제로 신용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일부 증권사들은 든든한 안전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은의 조치로 회사채 등 자금조달 시장 역시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그동안 단기자금 경색 우려로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기관들이 장기채 매입에 나설 수 있게 된 덕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단기자금 경색 우려가 컸던 시장 관계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한은이 단기자금을 대출해주는 형태가 됨에 따라 상당 부분 경색이 풀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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