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칼럼] 남북보건협력, 제재면제와 지자체·민간 협력으로 물꼬를 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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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입력 2020-03-2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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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석좌연구위원] 



세계는 지금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전광판의 세계 지도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시시각각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인류는 대규모 재난이 상시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고 경고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살아 있다면, ‘빈곤은 차별적이지만 코로라19는 차별이 없다’고 갈파했을 것이다. 그의 예견대로 코로나는 지역, 국가, 인종, 계급을 가리지 않고 공간의 경계를 넘어 동시간대에 빛의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언덕 위의 저택과 반지하 사이에는 긴 계단과 터널이 있었지만, 코로나는 그 격차를 단숨에 뛰어넘어 모두를 균등화시켰다.

코로나가 지구촌 구석구석을 강타하고 있지만, 나라마다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피해는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인구분포의 특성, 의료시스템, 재난관리능력, 사회적 신뢰, 정치적 리더십 등에 따라서 국가별로 대응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피해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국가별로 위험관리능력에 대한 성적표를 매기고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코로나 확산과 무관한 청정지역일까? 북한 언론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코로나 확진자가 한명도 없다고 발표하면서도 철통방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가 출현한 후 빠르게 격리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중·러 국경을 봉쇄하고, 의심대상자의 30일 격리, 수입물자의 10일 방치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실시했다. 북한은 자력갱생 방식으로 방역시스템을 강화하고 건군절 행사, 김정일 생일행사 등을 대폭 축소하고 평양국제마라톤대회도 취소했다.

철저하게 셀프 봉인을 한 북한의 실상을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북한도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지대라고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보도에 의하면 평안북도, 평안남도, 자강도, 강원도 등에서 ‘의학적 감시대상자’가 1만여명에 이르렀으며, 380여명의 외국인도 감시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30일 기준으로 북한에 남아 있는 격리대상자는 2280명 정도라고 한다. 북·중무역의 통로였던 신의주·평성, 관광지였던 원산·금강산 등이 위험한 지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중국인 관광객, 무역업자, 해외에서 귀국한 북한 근로자 등이 주된 감시대상인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의 상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북한의 의료체계와 방역체계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작동시키고 모든 보건인력을 방역에 투입하고, 의학 관련 연구기관과 생산업체를 동원하여 바이러스 검사설비, 소독약, 의료약품 등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물자 부족과 의료시스템의 부족으로 자력갱생방식의 방역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북한 주민의 취약한 영양상태를 고려할 때, 코로나에 저항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있을지 우려된다. 세계식량기구 등 유엔 산하 5개 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북한인구의 약 48%가 영양결핍 상태에 있다고 한다. 열악한 영양상태가 결핵 등 각종 질병에 취약한 이유라는 점은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남북 보건협력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열감지 카메라, 진단키트, 치료제, 의료진 보호장비 등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보건협력을 위해서는 이 품목들을 대북제재의 면제사항으로 승인 받아야 한다. 최근 중국, 러시아 등 8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보건의료협력을 위해 제재 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유엔에 요청하였다. 그리고 유엔인권위원회 대표도 인도적 지원을 위한 제재 면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 이란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의료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국제적 여론을 활용하여 대북제재라는 보건협력의 문턱을 제거해야 한다.

한편, 북한이 겉으로는 체면을 차리고 있지만, 직·간접으로 국제기구와 민간단체에게 보건의료 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가 대북의료지원을 추진했으나 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민간단체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의료지원 방법을 타진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의료지원 절차를 간소화하여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의료협력을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직면한 위험들이 지구촌 차원에서 얽혀 있으며, 이웃나라와 먼 나라의 일이 직접적으로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운다. 코로나 위협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산업화, 환경파괴, 무한한 소비욕구 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코로나를 만들어낸 것이 인간인 만큼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인지하고 공동의 대응책을 강구하려는 공감대, 사회적 신뢰, 소통이다.

코로나의 전파력을 감안할 때,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북한이 보건협력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남북한 주민의 생존권과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이고 필수적 사안이다. 2년 전 겨울 한복판 평창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았듯이, 코로나의 틈새에서 봄꽃들이 화사하게 봉오리를 피워 올리듯이, 역설적이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분단의 벽을 넘어 협력과 공생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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