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침체와 함께 사우디와 러시아의 증산 경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여파로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30일(현지시간) 배럴당 20.09달러에 마감, 18년 만의 최저까지 밀려났다. 장중에는 20달러가 붕괴되기도 했다. 연초 대비로는 65% 넘게 추락했다.
에너지 전문가인 댄 어진 IHS마킷 부회장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이 수준의 저유가가 이어진다면 미국의 원유 생산이 대폭 쪼그라들 것이다. 결국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지난 2018년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다.
두바이 소재 은행인 에미리트NBD의 에드워드 벨 상품 애널리스트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올해 미국은 세계 1위 산유국에서 내려올 게 확실하다"면서 "우리가 당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셈"이라고 말했다.
벨 애널리스트는 현재 리그 가동중단 추세라면 2분기부터 하루 산유량이 75만 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올해 초 미국 산유량은 하루 약 1300만 배럴로 집계된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기업 리포우오일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우 회장은 미국의 감산폭이 앞으로 12개월 동안 하루 10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국가가 산유량을 결정하는 사우디와 달리 미국은 민간업체들이 산유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감산폭이 크리라는 지적이다.
리포우 회장은 "유가가 배럴당 30달러에 미치지 않으면 노스다코타와 텍사스에서 셰일유 생산이 지속될 수 없다"며 "에너지업체들이 파산하거나 생존을 위해 인수·합병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셰일유업계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가 폭락을 부채질한 사우디와 러시아의 유가전쟁에 개입할 뜻을 내비쳤지만, 실제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별다른 방책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진 부회장은 "미국 정부는 외교 외엔 이 문제를 해결할 도구가 없다. 산유량은 각국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이달 초 감산합의가 결렬된 뒤 일제히 4월부터 원유 공급을 늘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리포우 회장은 "현재의 과잉공급 상황을 감안할 때 유가가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당분간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회복하긴 힘들 것이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