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이하 줌)의 대성공으로 줌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유안(51)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줌과 시스코 웹엑스(Webex)라는 주요 화상회의 서비스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지금은 경쟁자가 된 두 서비스가 같은 아버지를 두고 있는 것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숨어 있다.
유안 CEO는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칭다오에 위치한 산둥과기대를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 여자친구(현재 부인)를 만나기 위해 10시간 동안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차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힘들여 움직이지 않고도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아이디어는 이내 비디오 콘퍼런스 사업의 꿈으로 발전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가 그의 운명을 바꿀 '인터넷'을 접했다. 이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인터넷과 디지털이 미래를 바꾼다'는 내용의 강연을 듣고 '기회의 땅'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민을 간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좋지 않았던(사실 지금도 좋지는 않다) 미·중 관계 탓에 2년 동안 8번이나 비자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9번째 시도에서 간신히 비자를 받아 실리콘밸리에 발을 디딘 유안 CEO는 1997년 웹엑스라는 비디오 콘퍼런스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온라인 회의 개발에만 매진한 '장인'이었던 유안 CEO의 눈에 시스코의 반 고객적인 행보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웹엑스의 사용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모바일 화면 공유와 같은 신기능이 빠르게 적용되지 않는 것에 실망했다. 결국 2011년 웹엑스에서 함께 일하던 40명의 동료와 함께 시스코를 나와 줌을 창업했다.
유안 CEO는 웹엑스와 달리 줌은 쉽고 간단해야 하며 모바일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실천에 나섰다. 이에 줌의 시장 영향력이 확대되자 시스코도 줌을 벤치마킹해 웹엑스를 이용자·모바일 친화적으로 개량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유안 CEO는 거대 기술 기업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기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시장의 편견을 깨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새 이민자 성공 스토리를 썼다.
지난해 4월 줌은 창업 9년 만에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진행했다. IPO 당시 주당 32~35달러 수준이었던 줌의 주가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주당 159달러까지 치솟았다. 줌의 성공적인 상장으로 유안 CEO는 미국 주요 억만장자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
유안 CEO는 줌의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가입자 확보, 매출 확대 등에 신경 쓰느라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실리콘밸리 유니콘 스타트업들과 달리 영업 이익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본사, 세일즈 조직 등은 미국에 두고, 500명이 넘는 연구개발 인력은 중국에 두는 등 효율적으로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덕분에 줌은 2018년부터 흑자를 내며 다른 유니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량기업임을 입증했다.
당시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줌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금 보유, 이익 실현, 고객 확보 추이 등에서 투자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향후 줌이 온라인 회의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SaaS) 기업 상장의 모범답안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유안 CEO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전 세계 온라인 회의 시장은 같은 아버지를 둔 줌, 웹엑스와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의 삼파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용자 수를 20배 확대한 줌이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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