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번지는 '코로나 블루' 방역 나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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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건국대 초빙교수
입력 2020-04-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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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의 천방지축] 당초 4월 5일까지 시행하기로 했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2주간 연장돼 19일까지 실시된다. 이에 따라 종교시설과 실내체육시설, 클럽·유흥주점 등 유흥시설, PC방·노래방·학원 등의 운영 제한 조치가 19일까지 2주 연장된다.

정부가 시행 중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느새 일상의 용어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국민에게 자발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캠페인으로 사람들 간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 및 모임 참가 자제, 외출 자제, 재택근무 확대 등과 함께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씻기,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기침하기, 마스크 착용하기 등 기본예방수칙을 지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프로세믹스(근접공간학)’와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사회적 거리’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근접공간학(proxemics)’을 설명하면서 소개한 개념이다. 홀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공간을, 가족이나 연인과 스킨십을 나누는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친구나 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 회의나 사교모임에서 사용되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강연할 때 연사 주변에 형성되는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등 네 가지 ‘임계거리(critical distance)’로 분류했다.

이 임계거리는 인간관계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나를 기준으로 46㎝ 이내의 ‘친밀한 거리’가 가족이나 연인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라면 ‘개인적 거리’(46~120㎝)는 타인에게서 침범받고 싶지 않은 물리적 공간으로 가까운 친구에게 허용된다. 1.2m~3.6m 사이의 영역인 ‘사회적 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 유지하는 거리이며 ‘공적인 거리’(3.6~7.6m)는 무대 공연이나 연설 등에서 관객과 떨어져 있는 거리다.

‘사회적 거리’에 대해 홀은 업무상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지키는 거리로 상대방의 행동에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제3자가 끼어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통에는 촉각이나 후각보다는 시각적 요소와 볼륨을 높인 목소리가 사용되며 예의를 갖춰야 하고 사적인 질문이나 스킨십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무실이나 넓은 공간에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둔 소그룹의 회의나 모임, 호텔 로비 커피숍의 좌석은 통상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홀에 따르면 이 네 가지 공간의 크기는 문화권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영미권과 게르만 유럽의 ‘임계거리’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라틴 유럽보다 길다. 이는 다른 테이블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과 거의 등을 맞댈 정도로 촘촘하게 좌석을 배치하는 프랑스의 카페와 테이블이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있는 독일의 맥주집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공간 인식의 차이는 서로 손을 맞잡는 악수가 일반적인 영미권과 친구나 지인을 상대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프랑스식 인사법 비즈(La bise)가 널리 통용되고 있는 라틴 유럽의 인사법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경우 고개를 숙이거나 두 손을 합장하며 인사를 하기에 아예 신체적 접촉이 없다. 더욱이 서양에서는 범죄자나 중환자만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마스크 쓰기를 꺼린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아시아에 비해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 방역에 의외로 취약하고 유럽 가운데서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라틴 유럽의 상황이 더욱 심각한지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요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유감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 덕분에 확진자 증가폭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용어 선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소통의 욕구는 인간의 생존 조건 중 하나이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활동이 이루어지고 삶을 영위하는 인간에게 잠정적으로 교류와 소통을 자제하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옳은 방향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를 위한 담화’ 발표 다음날인 3월 22일 시작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간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2m 내 접촉을 피하자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캠페인 이름은 ‘물리적 거리 두기’가 되어야 옳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사회적 거리 두기보다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istancing)’라는 용어를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마리아 반 케르크호베 세계보건기구(WHO) 신종질병팀장이 “우리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 계속 연결돼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실생활에서는 사람 사이에 물리적 거리를 두지만, 음성통화, 화상통화, SNS 등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얼마든지 교류하고 활동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외출자제와 사회활동의 위축으로 의욕상실, 불안장애, 무기력감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편감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코로나19와 우울증을 뜻하는 블루(Blue)의 합성어인 ‘코로나 블루’는 초기에 우울·불안이 주된 증상이었지만, 팬데믹이 언제 종식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더해져 이제는 분노와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코로나 블루의 근본 원인은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외부활동 차단에 따른 고립감과 소외감이다.

사회적 거리 좁히기와 심리적 방역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피해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다. 폐업하거나 도산 위기에 처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일자리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 돌봄서비스로 보호받던 노약자, 확진자와 그가족이 겪는 심리적 불안감은 더 크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이 장기화될수록 사회적 취약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불안감이 집단 감염을 통해 사회구성원 전체로 빠르게 증폭,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국민들의 불안감과 고립감을 강화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대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서적 지지 같은 ‘사회적 거리 좁히기’가 필요하다. 또한 코로나19에 대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코로나19 이후 국가 공동체로서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하여 심리적 방역에도 관심을 둬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존 던(1572~1631)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처럼 우리는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고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기에.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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