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혁신과 기술력 부문에서 독일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국가다. 혁신성장과 제2벤처붐 확산에 박차를 가하는 우리나라에게 좋은 모델이 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독일 혁신 중소기업 비중이 관련 조사를 시작한 5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독일 중소기업의 절반 정도는 ‘혁신기업’일 정도로 기업 내 혁신활동이 보편화된 국가였다.
원인은 경기 부진이라는 대외요인과 함께 기업들이 혁신보다 디지털화에 무게를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혁신 중소기업 비중 감소 현상 속에서 ‘혁신의 양극화’라는 특징도 모습을 드러냈다.
혁신성장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게 독일의 사례는 중장기 혁신성장 정책 설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7일 독일 국책은행인 독일재건은행(KfW)에 따르면, 2016~2018년 기준 독일 혁신 중소기업 비중은 19%로 직전 조사 때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혁신 중소기업 수도 12만5000개가 줄어 72만5000개를 기록했다.
KfW는 해당 보고서에서 “이 기간 혁신 중소기업 비중은 약 50년 전 KfW가 중소기업 혁신활동을 조사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04~2006년 기간 혁신 중소기업 비중이 43%였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혁신기업 비중이 절반 이상 줄었다.
일단 이번 조사에서 포함된 ‘혁신’은 ‘연구개발에 기반한 참신함’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보다 넓다. 특정 고객 요구에 맞춰 제품을 변경하거나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도 혁신의 일종으로 본다. 제조공정에서 핵심 부분이 새롭거나 대폭 개선돼도 혁신으로 간주했다.
최근 혁신 중소기업 비중 감소는 제품 및 공정 혁신 활동의 축소에 기인한다. 제품 혁신기업의 비중은 KfW 중소기업 패널 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13%로 하락했고, 공정 혁신기업 비중도 13%까지 하락했다.
KfW는 “현재 비중 하락의 주요 원인은 경기의 순환적 하락과 중소기업들이 디지털화 실행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두 요인이 전통적인 혁신 창출 기업의 수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KfW는 덧붙였다.
추가적인 문제는 혁신 활동을 중단한 기업이 주로 소기업이라는 점이다. KfW는 소기업 혁신활동 감소는 제품을 모방하는 혁신기업 비중 감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모방 제품을 만들면서 소비자 요구에 따라 조금씩 제품 특성을 바꾼 기업의 활동이 정체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혁신 중소기업 비중이 감소했음에도 혁신에 대한 중소기업의 지출은 344억 유로(약 45조5000억원)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KfW는 “혁신기업 비중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혁신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일부 기업들은 혁신 활동을 중단하고 있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혁신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일부는 더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혁신 활동이 점점 소수 회사에 집중되는 ‘혁신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KfW는 “혁신 활동 측면에서 볼 때 신제품이나 개선된 제품·서비스를 도입한 기업 중 2/3는 자체적인 R&D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혁신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KfW는 “새로운 기술 개발과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한 R&D 지원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며 “또 자체 R&D를 시행하지 않는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는 자체 R&D 지원보다는 조직 및 역량 부문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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