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갖는 가장 큰 효능은 변화다. 시민은 표를 행사함으로써 변화를 꾀한다. 왕조시대에도 백성들은 변화를 도모했다. 지금과 다른 게 있다면 투표용지 대신 곡괭이와 죽창을 들었을 뿐이다. 허균은 천하에 가장 두려워할 바는 백성이라고 했다. 그는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부당해도 시키는 대로 하는 항민(恒民), 불평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원민(怨民), 그리고 때가 되면 들불처럼 일어나는 호민(豪民)이다. 21대 총선은 호민이 결집한 결과다. 더는 허접한 극우 야당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호민들은 보수를 궤멸시켰다.
21대 총선에서 나타난 긍정적 변화를 정리해본다.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20~30대 약진이다. 지난 4월 8자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국회는 세대 불균형이 심각하다. 청년 세대는 과소 대표된 반면, 장년층은 과잉 대표돼 왔다. 20대 국회에서 20~30대 의원은 3명뿐이다. 전체 300명 가운데 1% 대표에 그쳤다. 반면 이번 21대 당선자는 13명에 달한다. 4배 이상 늘었고 4.3%를 대표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18~40세 미만 유권자 비중(34%)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게 현실이다. 이에 비해 50대 이상 당선자는 83%를 차지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20~30대는 모두 6명이다. 민주당 김남국(37·안산단원을), 장경태(36·동대문을), 오영환(32·의정부갑), 이소영(35·의왕과천), 장철민(36·대전동), 통합당 배현진(36·송파을). 이들은 모두 쟁쟁한 상대를 제쳤다. 김남국 당선인은 통합당 3선 박순자 의원, 장경태 당선인은 통합당 3선 이혜훈 의원, 배현진 당선인은 민주당 4선 최재성 의원을 상대로 이겼다. 또 20대 2명도 비례대표로 진출하게 됐다. 최연소 정의당 류호정(27), 더불어시민당 전용기 당선인(28)은 사상 첫 20대 국회의원이다.
나이로 국회의원 역할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국회가 대의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려면 균형 있는 대표는 핵심이다. 청년 정치인에게는 역동성을 기대할 수 있다. 청년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상상력이 강점이다. 고령화된 국회에 이들은 신선한 촉매제다. 국회의원을 권력으로 여기는 기성 정치인에 비해 겸손하다. 참신함과 유연한 사고는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 정치판에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 최고 청년실업, 최저 출산율, 최고 자살률은 불행한 지표다. 청년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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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주목되는 변화는 역대 최대 여성 당선인이다. 21대 총선 결과, 여성 당선인은 57명이다. 지역구 29명, 비례대표 28명이다. 20대 국회보다 6명 늘었다. 여전히 19% 대표에 그치지만 꾸준한 증가는 의미 있다. 여성 정치인은 ‘아재 국회’와 ‘꼰대 국회’를 견제하는 대안 세력이다.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섬세함은 싸움판 국회에도 긍정적이다. 국회 상임위는 20개다. 이 가운데 운영위, 윤리특위, 예결특위, 특위를 제외하면 16개다. 1개 상임위당 산술적으로 여성 의원 3.5명씩 배정할 수 있다. 여성 정치인은 존재 자체로 소금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품격 있는 국회로의 가능성이다. 유권자들은 목소리 높이고 싸움을 일삼는 정치인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다. 막말과 독설 대신 논리와 품격을 갖춘 정치인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는 ‘막말 정치인’에 대한 무더기 철퇴로 귀결됐다. 우리 국회가 선진화되는 신호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선정한 낙선 후보 17명 중 3분의2가 낙선했다. 또 막말과 독설로 구설에 올랐던 정치인들도 대부분 퇴출됐다. 미래통합당 김진태(2선), 심재철(5선),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3선)에게 유권자들은 아웃을 명했다.
또 차명진, 이언주, 민경욱, 이은재 후보도 심판 받았다. 차 후보는 선거 기간 중 “세월호 XXX” 막말로 논란을 자초했다. 결국 30% 포인트에 가까운 표차로 떨어졌다. 민주당에서 국민의당, 다시 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독설을 일삼았던 이언주 의원도 마찬가지다. 막말이라면 뒤지지 않는 민경욱 의원도 낙마했다. 5·18 망언으로 파장을 불렀던 이종명·김순례 의원은 컷오프됐다. 적어도 21대 국회는 20대와는 다른 정치 환경이 기대된다. 막말과 몸싸움이 아니라 실력과 품위를 우선하는 국회다.
끝으로 활발한 세대교체다. 여야 할 것 없이 '올드보이'들이 대거 퇴장했다. 불출마 또는 공천 컷오프, 낙선을 통해서다. 복지부 장관을 지낸 손학규 민생당 상임선대위원장(4선), '정치 9단' 박지원(4선), 대선 후보 출신 정동영(4선), 7선 고지를 노린 천정배, 박주선(4선), 김동철 의원(4선)까지 줄줄이 낙마했다. 20대 국회 최다선(8선)인 우리공화당 서청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들과 달리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가는 ‘올드보이’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7선) 와 문희상 극회의장(6선), 그리고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6선)은 불출마를 택했다.
청년 정치인 약진, 여성 국회의원 증가, 막말과 몸싸움 정치인 철퇴, 올드보이 퇴장. 21대 국회에 감지되는 긍정적인 변화다. 소수와 약자를 대변하는 국회,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국회, 독주보다 상대를 포용하는 국회, 국민이 행복한 국회는 먼 나라 이야기일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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