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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미끄럼틀…사회적 경계하기, 물리적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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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 EUS+ 건축사무소장
입력 2020-04-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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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리움뮤지엄 안에 있는 ‘MUSEUM1’을 비롯해 교보문고 강남타워와 남양주 성모성지대성당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rio Botta)는 “건축은 우리 주변 환경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도구이며, 물체 하나하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 물체와 또 다른 물체 사이의 관계 확립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말했다. 인간이 누리고 경험하는 작은 생활 공간들이 모여서 집을 꾸미고, 마을을 만들며 도시의 풍경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한 건축 작업 과정의 최종 결과물은 건축 도면이다. 도면은 스케치나 다이어그램 같은 시각적 표현을 넘어 다양한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건축가가 소통하는 언어다. 생소한 언어를 만나면 누구나 당혹감을 느끼듯이, 일반인들이 익숙한 글자 대신 기호와 칫수가 가득 차 있는 건축도면을 보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그렇게 복잡한 수식이나 엄청난 이론이 아니다. 그저, 어떤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며 어떻게 조합이 되는지, 그리고 이것과 저것은 얼만큼 떨어져 있고 붙어 있는 지가 거의 90% 이상이다.

건축 도면에 담긴 ‘거리, 간격’에 대한 내용은 종이나 스크린이라는 평면 위에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3차원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단지 건축 자재의 물성(物性) 과 구법(求法)이 표현된 것 이상으로 사용자의 편의와 삶에 대한 건축가의 집요한 고민이 담겨있어서, 복잡하고 치밀한 내용일 수록 그 공간의 질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위한 편이성과 심리적인 감성, 그리고 안전을 위한 배려 등이 모두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거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모든 인문학과 철학과 마찬가지로, 건축이라는 학문에 오랜 세월동안 쌓여 온 이 고민들은 사람들 간의 합의가 바탕이 된 규칙을 만들면서 사회적인 질서를 유지한다. 건축가의 공간은 그냥 단순히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딱딱한 건축학 개론에서 신나는 놀이터로 가보자.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단연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다. 높낮이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걷거나 뛰어내리거나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힘 조절로 안정감과 스릴을 동시에 느끼며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인기 최고의 아이템은 그만큼 안전 확보를 위한 꼼꼼한 규칙이 있다. 대표적으로 자유공간과 충격구역에 대한 지침이 있는데, 자유공간은 활강면을 따라서 최소 1미터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충격구역은 미끄럼틀의 종류에 따라 도착지점에 최소 1미터 혹은 2미터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에 관심을 두고 실제로 많은 놀이터를 계획해 온 필자의 건축설계사무실에서는 이런 지침을 포함한 여러가지 ‘거리’에 대한 규정 때문에 늘 어떻게 하면 이것을 충족하면서도 창의적인 놀이공간을 디자인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물론 이것은 구조물을 설치할 때의 요건일 뿐, 실제로 노는 아이들을 보면 1미터라는 허상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본능적으로 뛰고 매달리고 미끄러지며 서로 피해 갈 뿐이다. 그렇게 하면서 놀이 공간을 즐기고 신체의 움직임을 배우며 알게 모르게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을 익힌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다친다, 뛰지 마라, 조심해라" 아무리 강조해도, 그들은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방법에서, 놀이터 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동네 놀이터는 안 그래도 한산한 풍경에서 아주 썰렁한 공간으로 비워져 버렸다. 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기 시작했어도, 정작 있어야 할 아이들이 있는 놀이풍경은 어딘가 허전하다. 어른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이들에게도 한 치 예외 없이 적용되고 실천된 이유라서? 마트에 가서도 비닐장갑 끼고 알코올패드로 카트 손잡이를 꼼꼼히 닦아야 안심이 되는 이 시절에, 놀이터 구조물이란 것이 안전하다고 느껴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의 선제적 예방조치로 강력히 요구된 여러가지 의무들이 시민사회 전체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 그 중의 하나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학의 측면에서 바이러스가 타인에게 전염될 위험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물리적 거리를 지키자는, 말하자면 ‘서로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규라는 이름만 안 붙었을 뿐, 공공의 위생과 안전을 위한 목적에서 한시적으로 지켜야 할 강제적인 지침까지 마련되었다. 다행이 확진자의 숫자가 나날이 안정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해서 이제는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빌 게이츠가 어느 인터뷰에서 강조했다고 하는 ‘친구 사귀기, 어울려 놀기 등의 물리적 사회활동은 절대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말처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부딪히는 아이들이 그립다. 텅 빈 놀이터를 보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각난 것은, 한시적인 ‘거리두기’에 방점이 찍혀진 지금의 상황이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텅 빈 놀이터와 같은 허전함과 사회적 공허함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다.

근대 동양문화권에서 Societ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회(社會) 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모이다’라는 뜻이다. 모임은 일상보다 더 가까운 만남을 의도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쩌면 모순된 의미를 억지로 붙여놓은 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기 보다는 사회적 경계(警戒, 境界)하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경계(境界)에서는 들어오고 나감이 자유로울 수 있지만, 서로가 인식하는 상대적인 경계(警戒)하기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배타적 성격보다는 훨씬 더 타협적이고 사회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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