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려면 R&D(연구개발) 전용 플랫폼이 필요하다."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27일 기자와 만나서 배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R&D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같이 밝혔다.
정 부회장은 "8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R&D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하고 있다"며 "꼭 통과돼서 차세대 배터리 산업을 연구하는 기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를 통해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 산업에는 R&D 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며 "미래 성장동력인 배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 지금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배터리 총괄 연구센터 필요"
업계는 배터리 산업 전반을 총괄하는 연구센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지역별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는 특구가 지정돼 있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기만 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은 "제주와 포항은 리사이클링 특구, 전남 영광은 e모빌리티 특구 등을 한다"며 "너무 분산되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배터리산업 전 분야 R&D를 주관하는 연구원과 클러스터가 필요하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자동차부품산업연구원이 있지만 기존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돼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전자전기과가 담당할 정도로 배터리는 담당 기관이 없어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1월 광주, 전북, 전남, 경남, 제주 등을 제2차 규제자유특구로 선정해서 배터리 관련 사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지정된 특구는 광주 무인저속 특장차, 대전 바이오메디컬, 울산 수소그린모빌리티, 전북 친환경자동차, 전남 에너지 신산업, 경남 무인선박, 제주 전기차 충전서비스 등 총 7개 지역이다. 이 중 대전과 울산을 제외한 5개 지역은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이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고, 배터리산업 생태계를 아우르는 대형 R&D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대다수 의견이다.
정 부회장은 "국내 소재 업체 중에서 매출 1조원을 넘는 회사가 5개는 나와야 한다"며 "에코프로비엠 정도가 올해 1조원을 넘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소재 산업 분야에 진입하는 중소 업체가 늘고 있다. 협회 회원사도 3년 전에 40개사에서 현재는 80개사로 늘었다"며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 만큼 중소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정부 사업 등이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한국 기술력 세계 최고...중국과 기술격차 4년
국내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중국 배터리 업체와는 기술력 차이가 4년가량 있으며, 일본 파나소닉과는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 기준(2019년)으로 일본(파나소닉)과 중국(CATL)에 밀리고 있지만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순위도 뒤집힐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수주잔고는 200조원을 돌파했다.
정 부회장은 "파나소닉은 테슬라에만 납품해서, 수요처 다변화가 안 돼 있다"며 "한국은 유럽, 중국, 테슬라까지 수요처가 다변화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CATL은 유럽에 공장을 짓고 있는데, 실제 고객은 1~2개 회사다. 중국 기술력이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독일 등 완성차 업체의 추격에 대해서는 진입장벽 때문에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 부회장은 "독일, 프랑스 등 완성차 업체가 스웨덴 배터리 개발업체인 노스볼트와 합작사를 만들었는데 프로젝트 진행이 잘 안되고 있다"며 "배터리 산업 진입장벽이 높아서 대규모 투자를 하더라도 7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포스트 코로나...전기차 성장세 더 커질 것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독일과 미국 등 전 세계 완성차 업체가 줄줄이 셧다운(가동 중단)을 했지만, 오히려 배터리 공급 회사들은 납품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총 7조원 규모 투자를 통해서 경쟁 업체를 따돌리겠다는 방침이다.
정 부회장은 "코로나 사태 때 LG화학만 미국 주정부 요청에 의해서 멈췄고, 이외 전 세계 공장은 가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배터리 공장은 사람이 적고 산업용 로봇이 적어서 피해가 적다"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양극재의 주원료인 니켈·코발트·망간의 가격이 하락해서 배터리 업체로서는 원가 개선을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가 장기 침체가 온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단기에는 원가가 떨어져서, 실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는 코로나19 사태와 저유가로 인해서 일부 수요감소가 있겠지만 전기차 활성화에 유리한 환경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도에서는 보이지 않던 설산이 보인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가 주는 교훈이다"라며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서 전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제2의 에코프로비엠을 찾기 위한 증권업계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전지 소재인 양극활물질 등을 제조하는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3월 증권시장에 상장해 현재 시가총액 1조5000억원을 기록 중이다.
정 부회장은 "소재기업 M&A(인수합병)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많은 기업이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증권업계에서도 기업에 대해서 물어보는 문의가 엄청나게 많다"고 말했다.
◆1회 충전에 1000㎞ 달리는 전기차 나온다
배터리 업체 간 주행거리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는 300~400㎞가 대세이지만, 5년 후에는 1회 주행에 1000㎞를 달리는 배터리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주력으로 사용되는 전기차 배터리는 니켈·코발트·망간 비율이 6:2:2인 NCM622 배터리다. 1회 주행에 400㎞를 달리는 현대차 코나EV와 기아차 니로EV 등에 사용된다.
배터리 업계는 NCM622보다 니켈 비중을 늘리고 에너지 밀도를 높인 NCM711, NCM811 등의 본격적인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비엠 등에서는 양극재에 알루미늄을 첨가한 NCMA 등 배터리도 준비 중이다.
정 부회장은 "국내 배터리 회사들이 1회 충전에 1000㎞ 배터리 기술 상용화를 위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힘쓰고 있다"면서 "주행거리를 무한정 늘리기보다는 경제성과 편의성을 생각한 배터리를 개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배터리 용량이 문제가 되는 시대는 금방 지나갈 것"이라며 "충전시간도 더 짧아지고, 보조 배터리 교체 시스템 등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기차 시장, 2030년까지 매년 25% 성장
중대형 배터리는 전기차뿐 아니라 보트와 전기 트럭,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국가적으로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전기차 시장은 2030년까지 매년 25%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유럽, 중국, 미국 등 3대 시장 수요가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디젤 보트를 전기로 바꾸고, 트럭 등 상용차에 전기 배터리를 탑재하는 등 전 모빌리티 산업에서 전기 배터리가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전남에서는 기존 어선을 전기 보트로 전환하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전기 트럭과 소형 전기차 등을 만드는 국내 중소 업체들이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하려고 한다"며 "이는 일자리 창출 효과와 신남방 정책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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