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펜데믹, 탈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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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0-04-3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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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세계를 뒤엎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이 세계화를 정지, 혹은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팬데믹을 통해 노출된 세계화의 치명적 약점을 거론하며 이제는 탈세계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수 십년간 숨이 차도록 빠르게 진행되어 온 세계화가 중단된다면 그간 나름대로 그 혜택을 보아오던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려할 시점이다. 어쩌면 한국에 이는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고 크나큰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세계화에 대한 반발의 기류는 이번 역병이 창궐하기 전부터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2016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그 시초였고 그 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서 이는 재차 확인되었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 오바마 대통령도 해외로 몰려가는 미국의 생산기지들을 미국 본토로 회귀시키려는 노력을 한 바가 있다. 이는 임금이나 물가가 싼 곳으로 무조건 생산 거점을 옮기는 다국적기업들 때문에 본국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데 대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부가 굳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세계적인 기업들은 향후 자국이나 자국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이는 이번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국가가 봉쇄 조치를 취한 결과 국제적인 공급망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적기에 필요 부품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생산을 중단하는 사태가 오게 되었다. 이 마당에 향후에 좀 더 자국 내 생산을 늘리려는 시도는 아마 당연한 추세가 될 것이다.

물자의 이동뿐 아니라 인적 이동의 제한도 탈세계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항공 시스템이 거의 붕괴되고 각국의 검역 통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벌써 국가 간 이동은 최소화했고 이는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다. 각국의 보호주의와 국수주의가 강화되면서 이민에도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다. 벌써 미국 정부는 한시적으로 가족 간의 이민 비자 발급마저도 중단한 상태이다. 아울러 해외 유학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벌써 미국에 있던 유학생들 상당수가 본국으로 귀국했다. 이번 학기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려던 외국 유학생들도 많은 경우 입국을 포기했다.

그간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했던 국제기구도 이번 사태를 통해 그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경우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을 받고 있고, 미국 정부는 지원금을 중단한 상태다. 국제기구의 영향력 감소는 이번 사태 전에도 진행되고 있었다. 자국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는 유네스코를 탈퇴했고 파리 기후 협정, 이란 핵 협상 등 국제적인 약속을 벌써 저버린 바 있다. 영국의 탈퇴로 인해 EU의 위상이 약화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폄하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종합하면 한마디로 냉전시대 현실주의로의 복귀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계속된다면 이는 신냉전시대의 도래로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현실주의에 입각한 국가의 권력은 한층 강화되는 추세다.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금액의 재난 지원금을 뿌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정부 조직은 확장되는 추세다. 자유주의나 구성주의에 입각한 국제 협력, 특히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 공조는 갈수록 요원한 얘기가 되고 있다.

물론 세계가 이런 공동의 위협에 처했기 때문에 국제 협력과 공조가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수십년간 진행되어온 세계화가 한꺼번에 중단 내지 둔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계의 무역·금융·통신망이 여전히 그 기능을 유지할 것이고, 세계화의 기틀은 건재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세계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을 통해 보여준 미국의 지도력은 너무나 허약했다. 미국 내부에서조차도 지도력은 실종되었다. 방역 대책이 허술했고, 의료 시스템은 취약하기 그지 없었다. 유럽 역시 많은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최초 발병국인 중국의 경우 억압적인 봉쇄 정책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있지만,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국가가 회의를 느끼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나라는 한국이 되었다. 중국식의 권위주의적 통제도 아니고 미국식의 느슨한 자유방임도 아닌 중간적인 정책을 통해 성공적으로 바이러스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의 체계적인 관리와 아울러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 얻어낸 성과이다. 이는 사실 한국이 과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한 발전 모델과도 흡사하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명확한 방향과 정책을 제시하는 관료 조직과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민간 부문 양자의 조화를 통해 이뤄낸 독특한 개발 형식이다. 미국식 워싱턴 컨센서스도 아니고 중국식 베이징 컨센서스도 아닌 한국식 모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팬데믹이 몰고올 탈세계화는 분명 한국에 악재임에 틀림없다. 경제의 80%를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국제무역의 침체는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면 한국이 이번에 보여준 바이러스 대처 모델은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벌써 여러 나라에서 이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지식을 해외에 전파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높일 수도 있다. 이 양자 중 어느 길로 나가게 될지는 결국 우리가 하기 나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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