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우리 몸 속 여행 유전자를 못 꺾는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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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20-05-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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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오디세이 20]
코로나는 우리 몸 속 여행 유전자를 못 꺾는다 ①
여행 욕구 충동하는 유전자 DRD4 7r


3주 만에 지중해 오디세이를 떠납니다. 그동안에는 선거라는 국가적 대사와 오른손목 골절이라는 개인적 참사로 인해 지중해에 배를 띄울 수 없었습니다. 선거에 대해서는 수많은 분이 말씀하셨으니 되풀이할 건 아닌 것 같고, 손목 부러진 경위는 보고 드리는 게 옳지 싶습니다.

선거 있던 주말, 4월 18일 밤 10시쯤 강아지를 산책시키려고 나선 길에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여러 바퀴 굴렀습니다. 다음 날,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손목뼈가 조각난 게 보여서, 월요일 종합병원 가서 수술 날짜 받고, 금요일(24일) 수술 받은 후 이틀 뒤에 퇴원했습니다.

“네 글도 혹세무민이다. 이제는 쓰지 마라”라는 계시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왼손으로 키보드를 쳐보니 양손 다 사용할 때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머릿속 생각이 모니터에 옮겨집니다. 글 그만 쓰겠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카톡과 페이스북으로, 다치기 전처럼, 남의 일에 간섭을 시작했습니다. 내친김에 왼손 만으로라도 지중해 오디세이를 계속 쓰기로 했습니다. “자료 뒤지고 지도 찾다 보면 오른팔목이 다 낫지 않겠어. 내 글 기다리는 독자님도 계실 것이고 ….” 이런 생각 하면서 그동안 쓴 것과 앞으로 써볼 만한 지중해 오디세이 항목을 정리해봤더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동안 쓴 것>

①지중해로 간다, 광합성 하러! ②카잔차키스의 크레타 섬-그대에게 오렌지 꽃물을 드리리 ③아몬드꽃-카뮈와 고흐가 고통 속에서 떠올린 꽃 ④지중해학-“차창에 올리브나무 보이면 거기가 지중해” ⑤그리운 에게 해(海)-지중해의 여신 마리아 칼라스가 묻힌 바다 ⑥지중해의 바람-바람나지 않으면 지중해가 아니다 ⑦겨울 지중해-멜랑콜리에 젖으려면 튀니지로 가라 ⑧시칠리아–마피아의 섬에서 오페라에 취하다 ⑨지중해 여행의 역사-대제국 ‘로마시민권’ 지중해 여행 프리패스였다 ⑩헬레스폰투스해협-바이런은 왜 미친 듯 지중해 해협을 헤엄쳤나 ⑪그리스의 나체-알몸을 충동하는 지중해 ⑫알제리 티파사-‘지중해적인 인간’ 카뮈가 여기 서있다 ⑬이스탄불 보스포루스-지중해의 목구멍은 왜 슬플까, 파묵이여 ⑭비제 ‘아를의 여인’과 파랑돌-지중해에서 춤 구경 하실래요? ⑮코르시카-관광지로 변한 복수와 유혈의 섬 ⑯산레모-가요제로 영광 되찾은 ‘이탈리안 리비에라’의 보석 ⑰모나코-한 여자의 빛과 한 사내의 욕망이 빚은 낙원 ⑱지브롤터-지중해를 삼킨 이슬람, 유럽근대사 새로 쓸 뻔 했다 ⑲코로나, 콜레라-카뮈가 오랑을 페스트 도시로 택한 이유는 지역감정?

<앞으로 쓰고 싶은 것>

①그리스의 노래하는 여신들-마리아 칼라스, 나나 무스쿠리, 그리고 멜리나 메르쿠리 ②성경 속 지중해와 소아시아 ③라벤나의 에바 페론, 테오도라 황후 ④지중해식 다이어트 vs 이탈리안 쿠치나 ⑤호메로스는 델포이 신전 오르는 ‘파르나소스 계단’의 출발점 ⑥용맹했던 로마군단은 왜 마마보이가 되었나 ⑦스키만드로스 강변에서 울부짖는 안드로마케-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 ⑧빌 브라이슨의 여행기에는 지중해가 없다 ⑨시칠리아의 ‘코레아 가문(Famiglia Corea)’, 그들은 어떻게 거기 살게 됐나. 등등 …

‘앞으로 쓸 것’도 재미있어 보이지요? 이 중 몇 꼭지는 자료가 준비돼 어떻게 첫 줄을 써야 독자님들 눈길을 확 잡아채나, 이 궁리만 끝나면 바로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디어에서 끝나 글로 탄생하지 못할 것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열과 성을 다해서 즐거운 읽을거리를 바쳐 올리겠습니다.

하지만 지중해 오디세이 재출발을 하기 전에, 내가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도 오래 생각했다는 것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혔잖아요. 아마 직업적, 전문적 여행꾼들도 나처럼 지도와 사진과 책으로 우리 몸 속의 ‘DRD4 7r’ 유전자를 달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어디로 떠나고 싶다거나, 더 새로운 걸 해보려는 욕구는 DRD4 7r의 작용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유전자는 ‘여행유전자’, ‘역마살 유전자’라고 불립니다.

(사진은 에이치라인 소속 장영철 선장이 선상에서 찍은 인도양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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