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관심을 보였던 그 찰라의 시간이 지난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그녀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당한 지 1년, 보도들이 쏟아지던 때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부터 꺼내놓았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범죄를 당한 직후부터 현재까지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은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아닌 '두 개의 목발'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9년 3월 23일 국민청원에 자신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피해자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글이 그녀의 글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1990년생 여자입니다"라는 말로 시작된 글은 그녀가 당했던 일들이 상세히 적혀있다. 그녀는 '몰카'라고 불리는 불법 동영상의 피해자다. 믿었던 사람이 가해자였는데 한번 퍼져나간 파일은 삭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녀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신의 피해를 상세히 설명했다. 법정에서 당했던 2차 피해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법정에서는) 제가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으면 묵시적 동의라고 한다. 그래서 저는 졸지에 동영상이나 사진 촬영에 동의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이 글에는 3만6627명이 동의를 했지만 이내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법정에서 세상이 무너져 내렸던 그날로부터 1년, 그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주경제 법조팀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믿었던 사람이···" 가장 힘든 시절에 찾아온 '불행'
그녀가 처음 입밖으로 내놓은 말은 "살 이유가 없다"란 말이었다.
2016년 11월 박모씨(28세·가명)는 일을 하다 한쪽 다리가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아야했다. 일을 하다 다쳤음에도 회사는 그녀의 부상을 산재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크게 고통을 받고 있었다.
빨리 치유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박씨는 재활을 하던 중 오히려 상태가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이에 1년 정도를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그녀를 정신적으로 지탱해주던 것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모씨였다. 다만 그녀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이씨가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몰래 촬영한다는 것.
이씨는 박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촬영을 시도했다.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씻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이씨는 씻고 있는 박씨를 화장실의 문틈을 통해 여러 차례 촬영했다.
박씨는 그때마다 "촬영을 하지 말라"며 강하게 화를 냈지만, 이씨는 그때만 사과할 뿐 어느새 또 '몰래'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박씨가 깨어있을 때 뿐만 아니라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촬영을 했다. 박씨는 당연히 거절했기 때문에 사진이 남아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8월 그녀의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아니 이미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때서야 그녀는 알게 됐다.
자신의 나체사진이 각종 불법 음란물 공유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박씨는 "정말로 믿었는데, 오히려 제가 힘든 것을 이용해 저를 범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은'?... 황당한 기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촬영한' 박씨가 당한 범죄에 대해 공소장에 적혀있는 한 문장이다. 공소장에는 황당하게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촬영한 촬영'과 '의사에 반한 촬영'이 동시에 존재한다.
2016년 10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본인의 집에서 박씨의 성기 및 나체를 동영상으로 55개 촬영했다. 검찰은 총 24회에 걸쳐 55개의 영상·사진을 촬영한 것은 박씨의 의사에 반한 것으로 봤다.
다만 검찰은 유포된 사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한 촬영물'을 그 의사에 반하여 유포하였다고 봤다. 박씨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부터 기소가 될 때까지 일관되게 '강하게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당연히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수사를 하는 사람들이 증명을 해야지 내가 반대한 것까지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라며 답답함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특히 그녀는 당시 경찰에서 들었던 말을 덧붙였다. 경찰은 그녀에게 "동의하셨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의를 한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어느새 '암묵적 동의'를 한 사람으로 돼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자 박씨의 답답함은 더 커졌다. '의사에 반하지 않은 촬영'이라는 부분은 오롯이 가해자의 진술이라는 것. 자신에게는 이와 관련해 검찰과 법원 모두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당시 첫 재판이 진행되고 재판을 방청하고 나온 박씨는 자신을 지탱하던 목발을 양옆으로 집어 던진 채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법이라는 게 약자를 위해서 있는 건데 이게 현실이다. 저를 두 번 죽이는 것 같아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고 재판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가 들은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가만 있어도 그 사람은 처벌될 건데 왜 그러냐"는 게 그녀가 국선변호인에게 들은 말이다.
특히 국선변호인은 "재판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돈을 내고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해야 한다"며 박씨를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그녀는 "사람 인생이 걸린 일인데···"라며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특히 그녀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그녀가 제출한 사진과 동영상뿐이라는 것.
박씨는 "그러면 내가 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았다는 건가··· 수사를 해야 하는 곳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말했다.
◆ 재판 전 '합의'해 달라는 가해자··· 경찰은 '외면'
박씨는 가해자를 피해 대구에서 타지로 도피해야 했다.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자 급한 마음에 가해자가 박씨를 찾아온 것.
재판에서 처벌을 덜 받기 위해 '합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박씨는 자신의 사진이 어디에 남겨져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합의를 거부했지만, 이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을 남겼다.
가해자 측 변호인도 마찬가지. 가해자의 친인척으로 알고 있는 가해자의 변호인은 '합의'를 해달라며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다.
위협을 느낀 박씨는 경찰에 스마트워치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정말 필요한 다른 사람들한테 가야 된다, 본인은 필요없지 않냐"는 게 경찰의 이유였다. 그래도 박씨의 요청이 계속되자 대구 달서 경찰서는 마지못해 박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그래도 가해자 측은 계속 박씨를 찾아왔다. 결국 박씨는 타지로 거쳐를 옮겨야 했는데 이사를 가게 되자 스마트워치는 반납을 해야 했다. 달서경찰서는 "그쪽 가셔서 거기서 발급 받으시라"는 말만 남겼다.
재판이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도 끝을 볼 수 있을 테지만 가해자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계속 중이다. 맨 처음에는 2018년 1월 선고기일이 잡혔지만 2년이 넘도록 선고가 나지 않고 있다.
가해자가 혐의를 모두 인정한 상태인데도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법원도 은근히 사건을 합의로 마무리하는 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그렇게 법원에 대한 기대도 접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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