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선별적 구조조정 위한 공적자금위원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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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입력 2020-05-0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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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교수]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4월 중순 한 식당에서의 장면이다. “큰일 났어, 일감이 다 떨어져서 실업자 되게 생겼어.” “말해 뭐해, 죽을 지경이지~” 그러다 누군가 “인생 뭐 있어? 즐겁게 사는 것이지~”라고 말하자 식당 주인이 대뜸 “요즘 즐겁다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라면서 면박(?)을 줬다. 그 즈음에 버스 안에서 들린 한 토막은 “바이러스 없어지면 좋은 날 올 테니까 조금만 참아~”

이제 코로나는 끝이 보이고 있다. 신규 확진자가 한 자릿수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방역지침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었다. 각급 학교도 순차적으로 등교할 예정이다. 문제는 코로나는 끝이 보이고 있지만 경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몇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체감경기는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정부로부터 나올 정도이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이나 여행과 같은 업종은 물론 정유, 조선, 자동차 등 대다수 산업과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급감하는 수출도 문제지만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생사 위기에 놓여 있다. 일부는 다행히 정부로부터 대출지원을 받는 등 한숨을 돌리고 있다지만 아직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같은 임시변통의 통증 완화식 지원으로는 우리 경제가 정상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포스트코로나시대를 앞서가는 리더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뛰어넘는 과감한 수술(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통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에 따른 근본적 처방을 빠르게 내려야한다. 1920~30년대의 전 세계적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가장 큰 위기 또는 그보다 더 심각한 대대공황(Greater Depression)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기업, 금융, 공공, 노동’ 4대 부문을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로 꼽았다. 이에 따라 30대 재벌의 절반이 사라지거나 다른 재벌에 인수되었다. 은행 등 금융부문에서는 3분의1에 가까운 인력이 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직장을 잃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5대 은행은 이른바 ‘조상제한서’, 즉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은행이었다. 이 중 지금까지 이름을 지키고 있는 은행은 제일은행 하나뿐이다. 그나마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대주주인 SC제일은행으로 살아남았지만 언제라도 ‘제일’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시 가장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친 기업 부문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면서 글로벌 일류 기업들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가 미국의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100위 안에 입성하는 등 모두 13개 제조회사가 500위 안에 자리하고 있다. 금융의 경우 국내에서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워 3개 회사(한화생명, 삼성생명, KB)가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우물 안에서만 머물면서 글로벌 금융회사를 키워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다 공공부문과 노동부문은 4대 부문 중 구조조정이 부실했던 분야로 꼽히고 있다.

그 결과 금융과 공공, 노동 부문은 3, 4류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해당분야 순위에서 꼴찌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오죽하면 우간다보다 못한 한국 금융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실제로 한국은행의 ‘산업별 노동생산성 변동요인 분석'(2019년 4월)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노동생산성(2011~2015년)은 미국의 59%, 독일의 63%에 불과하다.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37%, 독일의 39%로 더 부진한 상황이다.

외환위기 극복 시 기업 구조조정의 성공 요인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선별적(選別的) 구조조정’을 들 수 있다. 선별적 구조조정(disruptive restructuring)은 파괴적 구조조정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하지만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고 살아날 기업은 살게 한다는 점에서 선별적 구조조정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좋은 체리를 고르듯이 선별적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 기업과 금융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한다면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남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번이 대한민국으로서는 지속가능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을 상대로 지급하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앞으로 제조업과 금융 등 서비스업에 대한 지원 시에는 보다 철저하게 선별해서 지원해야 할 것이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라고 해서 마구 퍼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일부 기업에 긴급자금을 수혈하는 단편적∙산발적 지원으로는 터지는 둑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만약 발목을 잡는 공공부문과 노동부문이 있다면 이 또한 과감하게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2의 공적자금운용위원회의 구성을 건의한다. 필자는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설립을 처음으로 주장했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여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신설 공적자금운용위원회는 공적자금의 관리보다는 실질적 운용, 즉 공적자금의 조달 및 지원 대상의 선정과 규모를 투명하고 중립적∙종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초당파적·범정부적 기구가 되어 과감하면서도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경제와 자금 운용의 제1원칙이 희소한 자원의 최적 배분이라는 점과 제대로 된 선별적 구조조정의 첨병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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