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요. 30대 이상 성인남녀가 두 명 이상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누가 어디에 뭘 샀는데 몇억원을 벌었대"와 같은 주제가 으레 오갑니다. 삽시간에 궁금증의 초점은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에 맞춰지죠.
이에 본지는 소위 '아파트부자'로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와 재테크 노하우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공담과 실패 경험뿐 아니라 기회와 위기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과 전략, 그 결과까지 전하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30부작으로 연재합니다. 이 기록으로써 우리 모두 나름의 교훈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사기당해서 옥탑방에 살 때, 피눈물이 났어요. 임신한 아내가 5층을 계단으로 올라와야 했거든요. 에어컨도 없었어요. 나중에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더군요. 엘리베이터."
지금은 성수동 '강변건영아파트'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사는 그는 6년 전만 해도 일곱 평짜리 옥탑방을 신혼집 삼아 산만한 전깃줄과 눈 마주치며 살았다.
"32살쯤 잘못된 투자를 했죠. 사기를 당했어요. 대기업 초년생 때 모은 1억원을 완전히 날린 거예요. 그래서 결혼도 37살이 돼서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 보면 이때 당한 사기가 긍정적인 나비효과로 돌아왔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옥탑방이 현재의 '보라매자이'가 됐으니 말이다.
그렇다. 그는 속된 말로 '원수한테 추천한다'는 지역주택조합 성공사례다. 보라매자이가 완공되면 강변건영까지 전세를 놓고 18억~19억원대 대형평형으로 갈아탈 계획이라고 한다.
언뜻 운이 좋았던 것처럼 보이나 뜯어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들이 주효했다. 입지를 보는 안목과 기회를 잡아내는 감각도 남다르다.
요약하면 그는 옥석 중의 옥석을 가려 누구나 선호하는 핵심지를 골라왔다. 소·중규모 매물을 다수 보유하면 리스크 관리가 어렵고, 서울 외 지역은 시장 침체기에 취약하다는 판단에서다.
조만간 갈아타기가 끝나면 서울 핵심지 아파트 세 채에 50억원가량의 부동산 자산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2012년으로 돌아간다.
젊은 날 투자처를 물색하던 그는 대형 고급빌라로 돈을 벌고 내 집 마련까지 성공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한 건설업체 대표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막바지 자금 1억원만 빌려주면 상당한 수익에 집까지 얹어준다는 제안이었다. 현장을 보니 건물은 거의 다 올라간 상태였다. 입지도 괜찮았다고 한다.
문제는 대여금이 건설현장에 쓰이지 않고 모 국회의원 후보자의 정치자금으로 흘러가면서 벌어졌다. 불행 중 불행으로 이 후보자가 낙선해버렸다.
사기죄로 건설업체 사장은 감옥을 드나들었다. 대여금은 건축주 지체보상금으로 모두 날렸다. 알고 보니 다른 채무자도 여럿 있어서 그는 정말이지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지금은 웃지만 그땐 정말 지옥이었죠. 형사 고발도 해볼까 고민했지만, 관뒀어요. 감옥 몇 년 더 보낸다고 무슨 득을 보겠어요. 인간적으로 그분도 딱했거든요."
"2014년쯤 결혼을 해야 하는데 다시 1억원 정도 모았더라고요. 어찌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사기 경험 탓인지 리스크 의식을 정말 많이 하게 됐어요."
그는 과거의 부동산 시장을 공부하면서 서울에 뭔가 사놓으면 결국 우상향하는 교훈을 주목했다. 돈이 없어도 임대가 아니라 매매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마음을 곱게 쓴 덕일까. 그가 선택한 신대방삼거리역 인근 준공 11년차 빌라(현 보라매자이 부지 내)는 인생을 바꾼 첫 번째 선택이 됐다.
모은 돈은 전부 매수금으로 들어갔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비록 좁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신혼집이었음에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참담한 표정으로 수 분 만에 발길을 돌린 첫 집이다.
"잊을 수 없죠. 그 표정은. 곱게 자란 딸을 보는 심정이 어떠셨겠어요. 다시는 망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했어요. 아파트는 못 가도 무조건 서울에다 역세권 입지를 고른 거예요."
"옥탑방이라 뷰가 좋았어요(하하). 반년쯤 지나니까 주변에 모델하우스를 짓는 게 보였거든요. 여기가 지역주택조합사업(지주택) 대상지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지주택 사업은 분양가격이 저렴한 대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국민권익위 자료를 보면 2005~2015년 전국 155곳 중 입주까지 진행된 사례는 34곳(21%)에 불과하다.
전체 토지 중 무려 95%를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심 주택가일수록 동의를 구해야 하는 토지 등 소유자(땅 또는 집주인)가 많아 어려움이 크다.
조합은 그에게 옥탑방을 2억2000만원에 매입해주는 대신 1억원을 도로 조합원 가입비로 내면 로열층 59㎡(이하 전용면적) 입주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매매가는 1억원 중반대였다.
"지주택이 위험해도 가입하고 잊고 살면 일단 1억원이 수중에 생긴다는 거잖아요. 입지상 여기는 지주택이든 재개발이든 뭔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질렀어요."
"다시 그놈의 1억원이 남은 거예요. 이사할 곳을 물색하던 중 맞벌이하던 아내가 결혼 전부터 모아둔 비상금 9000만원을 보태겠다고 나섰어요."
"대신에 태어날 아이와 산책할 수 있는 공원과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더군요. 연애할 때부터 힘든 시기에 함께해줘서 고마운 마음에 하나 더 얹어주겠다고 했어요. 한강뷰!"
빚 내서 집 사라던 주택시장 침체기를 기회로 삼아 최대 70% 대출로 미래가치가 높으면서 입지가 우수한 곳을 저점일 때 선점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다시 서울 전역을 뒤졌고, 숲과 강이 있는 성수동을 골랐다. 지난 2015년만 해도 성수동은 현대자동차 GBC사옥 유치가 무산된 채 방치된 공장지대였다.
"박원순 시장 임기 내에는 절대 개발 안 된다고. 사면 미쳤다고 할 때였어요. 하지만 저는 입지가 좋으니까 언젠가는 결국 오를 날이 올 수밖에 없다고 봤어요."
"서울에서 교통이 우수하고 강과 숲까지 있는 곳. 누구나 탐내는 곳이잖아요. 달리 어디로 가겠어요? 지금은 서울의 브루클린, 힙한 고급주택지가 됐죠."
이 판단은 옳았다. 그가 6억원에 사들인 84㎡ 한강뷰 매물은 최근 15억원에 거래됐고, 코로나 사태 영향에도 불구하고 16억원까지 매물가격이 올라가는 중이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할 때 저점인 지역과 매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하지 않고 가진 형편에 만족했다면 잡아낼 수 없었던 기회였다.
"특히 지주택 매물을 중간에 팔지 않은 선택도 결정적이었어요. 조합원 가입 후 착공 전 계약 시점이 되면 그동안 마음고생 한 탓에 던지는(매도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가입비 빼고 최종 분담금 포함해서 저는 4억원을 더 내서 투자했어요. 무조건 오르는 지역이라고 봤거든요. 주변 시세가 벌써 12억원까지 올랐으니 괜찮은 판단이었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는 학군이 우수한 대형평형 아파트를 노리고 있다. 보라매자이와 성수동 강변건영아파트에서 각각 6억~8억원씩 전세를 받아 현금으로 매수하는 방향이다.
둘 다 또는 둘 중 하나를 파는 것도 고려했지만,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양도소득세가 막대한 데다 각자 지역에서 나름의 호재가 있기에 향후 상승 여력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보라매자이 등기 후 다주택자가 되면 법인 또는 친족 간 양도로 절세할 계획도 세웠다. "매년 1000만원 정도의 보유세 무서워서 수억을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지방은 보지 않아요. 실거주든 투자든 핵심지로 들어가야 한다고 봐서요. 가장 리스크가 적은 건 전국에서도 서울이고, 서울 중에서 교통·학군. 플러스 알파로 한강뷰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살지 않는 지역에 투자했을 때는 리크스관리가 어려워요. 리스크에 유독 신경 쓰는 이유는 언젠가 하락기가 오기 마련이고, 제가 사기를 당해봐서 그런가 봐요(하하)."
그는 마지막으로 "속상했던 옛기억과 다음 집을 알아보는 지금의 설렘까지 만감이 교차합니다. 독자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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