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속 2차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양국의 대립이 무역과 금융을 넘어 통신·반도체 등 기술 분야로까지 확대하자, 세계는 미·중 발(發)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에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국적을 불문하고 반도체 제조업체가 미국 기술을 조금이라도 활용했다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제재 강화 방침을 내놨다. 기존 제재에선 미국 이외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기술 활용도가 25% 미만이라면 별도의 허가 없이도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번 방침은 화웨이와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인 TSMC 사이의 협력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자체 생산 능력이 없는 화웨이의 아킬레스건인 TSMC와의 협력을 끊겠다는 것이다. 향후 제재 강화로 미국 정부가 TSMC에 화웨이 공급 자격을 승인하지 않으면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망은 궤멸하게 되는 셈이다.
작년 5월부터 시작한 제재로 퀄컴 등 미국 업체로부터 핵심 반도체 부품을 납품받을 수 없게 된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우회적으로 공급망을 확충했다. 하이실리콘이 필수 반도체를 설계하고 TSMC에 하청 생산해 납품하는 방식이었다.
실제 쉬즈쥔 화웨이 순환 회장은 지난 3월 중국 정부에 미국의 추가 제재를 저지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면 세계 산업 사슬 속에서 붕괴되는 것은 화웨이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치가 "미·중 경제 긴장의 새로운 국면을 촉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고 로이터는 "코로나19 발원 문제를 놓고 관계가 악화한 미·중 간 기술 지배력 싸움의 한가운데에 화웨이가 섰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가 본격화하자 중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 관영 영자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14일 "미국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으면 중국보다 미국인들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논평을 낸 데 이어, 15일에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애플·퀄컴·시스코·보잉 등을 겨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에 올리고 사이버보안검토조치, 독점금지법 등 중국 법에 따라 수사와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 책임론'을 명목으로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도 있다"는 발언까지 쏟아내며 압박 수위를 연일 높였다. 앞서 지난 11일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어떤 형태로든 미국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의 손해배상이 있어야 한다"면서 10조 달러(약 1경233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언급하기도 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15일 "지난 40년간 협력 관계를 이어온 양국의 '대결별'(the Great Decoupling)이 시작했다"면서 "새로운 냉전 대결 구도인 '냉전 1.5'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매체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생산을 늘리려는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보호주의 기조가 코로나19 사태로 빨라졌다"면서 "이는 글로벌 공급망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컨센트레이티드리더스펀드(CLF)의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소쿨스키는 CNBC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매우 빠르게 반복하면서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악화할 수도 있다"면서 "이는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 회복에 중대한 위험이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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