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첫 국회의장에 6선의 박병석(대전 서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실상 확정됐다. 당내 경쟁자였던 김진표(5선·경기 수원무) 의원이 20일 국회의장 후보 등록을 포기하면서 박 의원이 단일 후보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박 의원은 삼수 끝에 입법부 수장직을 맡게 됐다.
특히 여의도의 대표적 '중국통'인 박 의원이 국회의장에 오르면서 21대 국회에서 '한·중 의원 외교'가 한층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합리적 리더십의 소유자인 박 의원이 입법부의 총지휘자가 됨에 따라 여야 협치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도 탄생했다. 4선의 김상희(경기 부천소사) 의원이 여당 몫 국회 부의장으로 단독 입후보하면서 사실상 부의장으로 확정됐다.
◆김진표 경선 포기…與 25일 추대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이날 돌연 국회의장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고민 끝에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박 의원은 오는 25일 열릴 국회의장 선거에서 경선 없이 추대될 예정이다.
박 의원이 추대된 배경에는 당내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압도적 승리로 훈풍이 부는 이때 굳이 '집안싸움'을 해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간 의장은 최다선이 맡은 게 관례였다. 이를 깨고 경선에서 맞붙는 모양새 자체가 김 의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의원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1998년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9년 고건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거쳐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전 서구갑에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대전 서구갑에서만 내리 5선을 했다.
앞서 2012년 19대 전반기 국회 땐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20대 국회에선 국회 전·후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했지만, 정세균 국무총리와 문희상 국회의장 등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박 의원은 계파색이 옅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혀왔다. 논리가 명쾌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 박 의원은 뛰어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국회 내 ‘큰형’ 역할을 해왔다. 19∼21대 국회까지 초선 당선인들에게 의정활동을 조언하는 손편지를 써주는 등 세심함을 갖추기도 했다.
◆커지는 한·중 협력···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
박 의원은 국회 한·중 의회외교포럼 회장을 지낸 대표적 중국통이다. 기자 시절 홍콩특파원으로 중국 톈안먼 사태를 취재해 자오쯔양 실각을 단독보도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선 무력 진압 가능성이 높아 특파원 대부분이 철수했지만, 박 의원은 자리를 지킨 끝에 1989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해빙무드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7년 대선이 끝나자마자 나흘 만에 사실상 특사로서 '국제협력 정상 포럼' 참석차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을 만나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어가 유창한 박 의원에게 상당한 호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말에는 한·중 의회외교포럼 차원에서 북·중 접경 지역을 찾아 신북방 우호 및 경제 협력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신북방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접목을 모색하는 한편, 한국 기업 진출 논의, 한·일 무역 마찰 및 미·중 무역전쟁 관련 협력 방안을 마련했다.
국회의장에 이어 부의장도 김상희 의원으로 단일 추대됐다. 민주당은 이날까지 여당 몫 국회 부의장 후보에 김 의원이 유일하게 등록했다고 밝혔다. 출마를 고민하던 5선의 변재일·이상민 의원은 막판 불출마하면서 '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 탄생'에 힘을 보탰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김 의원은 21대 총선을 통해 4선 고지에 올랐다. 당내 김영주 의원과 함께 여성 최다선 의원이다. 앞서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한 김 의원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을 맡았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한 뒤 19∼21대에서 내리 당선됐다.
특히 여의도의 대표적 '중국통'인 박 의원이 국회의장에 오르면서 21대 국회에서 '한·중 의원 외교'가 한층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합리적 리더십의 소유자인 박 의원이 입법부의 총지휘자가 됨에 따라 여야 협치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도 탄생했다. 4선의 김상희(경기 부천소사) 의원이 여당 몫 국회 부의장으로 단독 입후보하면서 사실상 부의장으로 확정됐다.
◆김진표 경선 포기…與 25일 추대
박 의원이 추대된 배경에는 당내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압도적 승리로 훈풍이 부는 이때 굳이 '집안싸움'을 해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간 의장은 최다선이 맡은 게 관례였다. 이를 깨고 경선에서 맞붙는 모양새 자체가 김 의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의원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1998년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9년 고건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거쳐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전 서구갑에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대전 서구갑에서만 내리 5선을 했다.
앞서 2012년 19대 전반기 국회 땐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20대 국회에선 국회 전·후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했지만, 정세균 국무총리와 문희상 국회의장 등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박 의원은 계파색이 옅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혀왔다. 논리가 명쾌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 박 의원은 뛰어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국회 내 ‘큰형’ 역할을 해왔다. 19∼21대 국회까지 초선 당선인들에게 의정활동을 조언하는 손편지를 써주는 등 세심함을 갖추기도 했다.
◆커지는 한·중 협력···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
박 의원은 국회 한·중 의회외교포럼 회장을 지낸 대표적 중국통이다. 기자 시절 홍콩특파원으로 중국 톈안먼 사태를 취재해 자오쯔양 실각을 단독보도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선 무력 진압 가능성이 높아 특파원 대부분이 철수했지만, 박 의원은 자리를 지킨 끝에 1989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해빙무드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7년 대선이 끝나자마자 나흘 만에 사실상 특사로서 '국제협력 정상 포럼' 참석차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을 만나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어가 유창한 박 의원에게 상당한 호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말에는 한·중 의회외교포럼 차원에서 북·중 접경 지역을 찾아 신북방 우호 및 경제 협력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신북방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접목을 모색하는 한편, 한국 기업 진출 논의, 한·일 무역 마찰 및 미·중 무역전쟁 관련 협력 방안을 마련했다.
국회의장에 이어 부의장도 김상희 의원으로 단일 추대됐다. 민주당은 이날까지 여당 몫 국회 부의장 후보에 김 의원이 유일하게 등록했다고 밝혔다. 출마를 고민하던 5선의 변재일·이상민 의원은 막판 불출마하면서 '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 탄생'에 힘을 보탰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김 의원은 21대 총선을 통해 4선 고지에 올랐다. 당내 김영주 의원과 함께 여성 최다선 의원이다. 앞서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한 김 의원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을 맡았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한 뒤 19∼21대에서 내리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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