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석유 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비전 2030'을 추진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 머니'를 잡기 위한 투자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사우디는 홍해 인근에 조성계획인 신재생 에너지 스마트 시티 '네옴' 조성 사업에 인공지능(AI)과 네트워크, 사물인터넷(IoT) 등과 관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서울 44배 규모로 조성되는 이 신도시 계획은 우리돈으로 약 800조원이 투입되는 메가 프로젝트다.
이미 세계 1등의 수소차 엔진, 스마트시티 건설경험, 5G이동통신 인프라를 보유중인 국내 기업들에게 '제2의 중동 특수'와 다름없는 셈이다. 1970년대 국내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 오일 머니를 벌어들였다면 탈석유화 시대를 맞아 앞선 기술력을 무기로 오일 머니를 노릴 계획이다.
특히 국영석유기업 아람코를 이끄는 '세계 3대 부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6월 방한해 하루 만에 9조6000억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현대자동차와 수소에너지 및 탄소섬유 소재 개발 협력 강화 등 양해각서(MOU)를 맺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88년부터 수소전기차 개발을 시작한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양산에 성공하는 등 뛰어난 수소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 석유기업인 아람코의 수소차에 대한 관심은 저탄소 시대의 흐름과 휘발유 자동차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도 탈석유화를 위한 핵심 기술을 키우고 있다. 미래차 기술력의 핵심인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 기술, 차량용 전장(전자장비)부품 등을 통해서다. 또한 삼성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도 리야드에서 45㎞ 떨어져 있는 사막 지대에 조성할 계획인 사우디판 디즈니랜드인 '키디야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각종 정보기술(IT)이 핵심인 만큼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의 IT 반도체 기술 협력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에쓰오일도 지난 6월 아람코와 60억 달러 투자 협업을 진행했고, 현대중공업은 아람코와 해상 유전과 가스전 사업을, 효성은 탄소섬유 공장 협력을 약속했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에도 탈석유화는 기회다. 3사는 이미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40%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총 약정 수주액은 300조원으로 추정된다.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그린뉴딜'의 핵심 먹거리로 꼽히는 만큼 당분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23년까지 100조원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 SDI의 경우, 올해 실적이 지난해보다 29.4% 늘어날 것이란 게 증권가의 예상이다. 코로나19가 대유행이었던 지난 3월 18만원까지 떨어진 주가가 불과 2개월 만에 두배 넘게 뛰었다. LG화학 등 경쟁사가 화학과 정유 사업을 함께 갖고 있어 실적 희비가 엇갈린 데 비해 배터리 사업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유 기업들은 탈석유화 흐름에서 혼돈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유업계의 경우 저유가와 공급과잉으로 어려워진 반면, 정제·유통은 가격하락에 따른 수요 증가로 실적호조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온실가스 규제와 전기차 시장 확대 등 탈석유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활로 개척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을 종합하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네 기업의 정유사업(석유화학·배터리 사업부문 제외)은 21조4725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4조42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