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당선자 워크숍에선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번 21대 총선 경북 군위·의성·청송·영덕에서 당선된 김희국 의원이었다.
“전세나 월세를 사는 사회적 약자가 2년이나 3년 만에 수십 %가 오른 억 소리 나는 집세를 거의 폭력적으로 강요당해도 우리당은 언제나 ‘계약자유의 원칙’과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외치면서 표를 잃어왔다”, “우리는 따뜻한 마음이나 인간의 애처로운 실존적 삶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얼음처럼 차가운 법리나 현학에 가까운 원칙 그리고 공공성, 사회성, 평등성보다는 경제성을 우선하지 않았느냐” 등의 가감없는 비판을 내놓은 그는 “요란한 구호나 정책 운운하지 말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예의 즉 인간의 인간에 대해 사랑, 우리 모두 한 식구라는 ‘따뜻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보수정당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목소리였다. 그가 말한 ‘따뜻한 마음’, ‘세습사회 극복’ 등이 궁금했다. 3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보수당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정의와 공정의 가치는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기 잘못 없이 불운으로 불행해진 분들에 대해서 정상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같은 국민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19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 입성하셨다. 4년간 원외에 있었는데 밖에서 본 통합당은 어땠나.
“한마디로 오합지졸!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전투 의지도 없는 3무 정당이었다.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깃발 즉 캐치 프레이즈나 정책이 없었고, 정당을 이끌어 가고 통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쉽도 없었고, 엉망진창이었던 공천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2019년 10월 3일을 생각해 보라. 수백만 민중이 광화문 거리를 메웠고 ‘정권타도’ ‘좌파척결’을 외쳤지만 지도부는 무슨 짓을 했나.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뿐이었다. 우리 보수는 2008년부터 이명박 대 박근혜,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친박대 비박, 2019년에는 친황 대 비황으로 분열되어 그 힘이 4분의 1이 된 2016년 가을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당했고, 8분의 1이 된 2020년에는 수도권에서 121석중 겨우 16석을 얻었다. 이건 당도 아니다. 유구무언일 뿐이다. 안희정이 말한 폐족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는 당의 간판을 내리려 할 끝판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나.”
Q. 이번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했다. 참패 원인이 뭐라고 보나.
“한마디로 적이 강해서 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해서 진 것이다. 선거를 전투에 비교해서 보자. 전투는 전략, 장비, 사기로 싸운다. 통합당의 전략은? 상대방 욕하기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비전은 없고 적을 욕하고, 길거리 나가 좌파의 전유물인 농성하고, 단식하고, 머리에 붉은 띠나 두르고, 전투가 시작도 되기 전에 이미 진 것이다. 전투는 이기는 것이 첫째 목표다. 그런데 이길 수 있는 카드는 버리고 질 수밖에 없는 전투병을 전장에 투입했으니 승패는 불문가지였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됐나. 경험이 없는 자들이 전략을 짰고 당과 국민보다 개인의 이익을 생각했다. 삼척동자나 필부필부도 다 아는 것을 당의 지도부들은 몰랐으니 더 할 말이 뭐가 있겠나.”
Q. 일각에선 영남 의원들이 수도권 정서를 많이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팽배한 영남 정서에 의존했던 게 통합당 패배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영남 의원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소가 웃을 이야기다. 4·15총선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병력 투입을 영남권 의원들이 했나. 김형오가 주도한 공천위에는 TK(대구·경북) 출신이 한 명도 없어 공천위원 중 한 사람은 “TK 후보들에 대해서는 아는 위원도,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선교 전 미래한국당 대표가 주도한 그 당은 또 어땠나. 정신이 온전한지 의아할 수준이었다. 수도권 선거 실패의 원인은 앞서 말씀드린 이유 때문이지 영남 의원들과 연계하는 자들은 웃기다 못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덜떨어진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꼭 못난 자들이 자기 탓은 안 하고 남 탓한다. 그러면 영남 의원들 입 다물고 손발 묶고 있을테니 수도권에서 한 판 더 붙어보라고 하라.“
Q. 당선자 워크숍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부족하다고 지적, 사회적 격차, 차별 해소를 언급했다. 어떤 문제의식인가.
“38세 된 어느 젊은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 걱정이 뭔지 아느냐, 제가 결혼을 하면 아들 집을 구해줘야 하는데 부모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여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가 월급이 한 300만원 된다고 하더라. 1년이면 3600만원 30년 벌어야 돈 10억원이다. 강남의 아파트가격은 웬만하면 25억원이다. 그 외 지역들 7~8억원이다. 계산이 안 나오지 않느냐.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수도권 2030 표를 얻겠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이 뭔지 우리는 그 속을 알아야 된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공화국임에도 평등의식이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주창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중국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중국도 1949년 공산당 간부를 제외하고는 전국민이 동일 선상에서 출발했고, 대한민국도 1910년 한일병탄, 1950년 6.25 동란으로 인해 기득권은 무너지고 누구나 비슷한 처지의 같은 선상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덧 70년 정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열심히 일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넘사벽이 생겼다. 이것은 차별이나 격차를 넘어선 좌절과 절망으로 이어진다. 벽 이쪽에 있는 사람들과 벽 저쪽에 있는 사람들과는 취업, 연애, 출산, 보육, 양육과 교육, 노후 설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큰 차이가 발생 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조귀동이 쓴 ‘세습중산층사회’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벽 이쪽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절망을 이해했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Q. 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보수정치권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이 쓴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 살고 싶습니까’란 책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사회 제도 전반 특히 정치 분야에 대한 불신, 고성장 구도에서 맛보고 느낀 성취감과 삶의 질 향상이 저성장이 고착화 된 지금 시대에 일상화 된 불만, 그리고 모든 세대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 시대 대한민국에 드리어진 검은 구름이라고 한다. 보수정치권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재열은 첫째 정의사회 구현. 이는 정의론의 저자인 롤즈가 말하는 전구성원 중에서 어려운 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유지가 가능한 의식주와 위험으로부터 보호, 둘째 공정. 이는 기회의 균등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셋째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이 극대화 할 수 있는 경쟁 시장. 그리고 사회적 고립감이나 소외를 해결할 수 있는 소속감, 연대감 형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보수당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정의와 공정의 가치는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 될 것이라고 보나.
“2022의 시대정신은 당연히 이 시대를 짓누르고 있는 불신, 불만, 불안 해소다. 따라서 보수의 리더는 이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안 된다 시리즈’로 국민의 지지를 얻겠나? 누가 어떤 비전을 제시하면 일주일 안에 그 비전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헛소리인지 금방 판단이 되지 않느냐. 복잡하지 않고 현란하지 않게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자유당 시절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 박정희 시절의 ‘잘 살아보자’, 김대중 시절의 ‘햇볕정책’처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된다.”
Q. 보수가 집권할 수 있는 조건은.
“하하! 보수 집권요? 중국인들은 ‘권력을 잡으려면 민심을 얻어야 하고, 민심을 얻으려면 국민이 좋아하는 일은 하고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마라’라고 했다. 보수는 지금 이 교훈을 실천하고 있나. 보수는 수도권 2030세대가 고통 받고 슬퍼하고 좌절하는 현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그 점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나. 실업수당, 출산수당 모두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놀고먹는 복지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닌가. 저는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기본소득을 찬성한 적도 없고 좌파 사상으로 좌클릭 한 적도 없다. 다만 제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권력을 잡아 자유. 시장경제. 정의. 공정.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이고 이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우리는 배고 국민은 바다입니다. 배를 띄우는 것도 바다이고 뒤집어 침몰시키는 것도 바다다. 민심은 천심이고 국민은 밥이 전부다. 진부한 관념의 포로가 되어 세상 바뀌는 줄 모른다면 배는 뒤집혀 침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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