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오전 2시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전날 이 부회장과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장고 끝에 세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부 기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4일 이 부회장 등에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위반,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들이 이 부회장 경영 승계와 연관이 깊다는 판단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율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 기각 결정은 검찰의 수사 편의주의에 대한 제동으로 읽힌다. 대법원이 낸 ‘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전국 지방법원 구속영장 발부율은 81.3%(기각 18.6%)였다. 3만65건 청구에 2만4457건이 발부되고 5610건 기각됐다. 불구속 재판 원칙에도 불구하고 구속할 만하다고 인정된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원 부장판사의 기각 사유를 현행법에 비춰 보면, 검찰의 수사 편의주의를 읽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 201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같은 법 70조 1항에 따라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가 관할지법 판사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그간 피의자 구속은 재판 전부터 전국민적인 유죄 심증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무죄 여부와 형량은 검찰과 변호인 간 법리 싸움 뒤 판결선고로 결정된다. 하지만 수사기관 의견에 좌우된 과거 ‘조서 중심주의’ 폐단이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있어왔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시세조종·분식회계 관여 관련 보강 수사에 나선다.
공은 이 부회장 측이 2일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로 넘어갔다. 교수와 변호사 등 사회 각계 인사 15명 규모의 검찰시민위원회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본격 심의 여부를 결정한다. 심의를 하기로 의견이 모이면 10명 이상 규모의 현안위원회가 이 부회장 기소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낸다.
물론 검찰이 심의위 의견을 따를 의무는 없다. 하지만 심의위가 열리기 전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초강수가 기각으로 뒤집혔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동력을 잃었을 심의위가 이제는 검찰 명분에 중요한 변수로 급부상했다. 검찰은 심의위가 기소 여부를 다룰 뿐 구속 심사는 하지 않아 영장 청구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면 검찰이 최대 20일 이내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므로 심의위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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