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상장법인이던 A회사는 2011년 말 당좌자산이 253억원, 순자산이 266억원에 이를 정도로 내부 현금 보유율이 높은 건실한 회사였다. 그러던 A회사는 2012년 3월 말 경영권이 B씨로 이전된 후인 그해 말 자본잠식률이 81%에 이르는 등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 사이 A회사는 2012년 8월 반기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인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었고, 2013년 4월에는 자본잠식률 50% 이상 사유로 상장폐지되었다. 투자자 C씨는 A회사의 우량한 재무상태를 믿고 2012년 4월 A회사 주식을 매수하였다가 결국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회사는 2012년 4월 초 변제능력이 전혀 없는 D회사(비상장법인)가 발행한 빈껍데기 전환사채를 현금 150억원에 매입한 것이었다. C씨는 A회사가 2012년 8월 반기보고서(감사의견 거절로 관리종목 지정)를 공시할 때까지 그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위 반기보고서가 공시되었을 때에는 이미 거래정지가 되어 주식을 매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A회사는 2012년 3월 말 B씨 등이 인수하였다. 전환사채를 발행한 D회사도 사실은 B씨 등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였다. B씨 등은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A회사를 인수한 뒤 A회사로 하여금 D회사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150억원에 인수하게 하는 방법으로 A회사의 현금 150억원을 얻은 뒤 이를 자신들이 빌린 돈을 갚는 데 사용하였다. 소위 ‘무자본 M&A’를 한 것이었다.
우리 법은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제도를 두어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 정보가 발생하는 경우 그 사실을 다음 날 또는 3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최근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 10% 이상에 해당하는 중요자산을 양수할 경우 이를 주요사항보고서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규정에 의하면 A회사의 위 전환사채 인수는 분명히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대상이다.
그런데 A회사는 왜 주요사항보고서 공시를 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법무법인과 금융감독원이 주요사항보고서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B씨 등은 대형 법무법인에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대상이 되는지 문의하였다. 그 법무법인은 발행하는 회사채를 인수한 것이므로 ‘자산양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하였고, 금융감독원 규제 실무에서도 그렇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전환사채의 발행에 대해서는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대상으로 규정하면서도 전환사채 인수에 대해서는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 중요사실을 신속하게 알리기 위한 주요사항보고서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이러한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A회사는 당시 자산총계가 약 308억원이었으므로 인수하는 회사채 150억원은 A회사 전체 자산의 절반 가까운 것이었다.
다행히 여러 법원은 A회사의 위 전환사채 인수 사실이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대상이라고 보았다. 필자는 C씨를 비롯한 A회사 투자 피해자들을 위해 B씨 등을 형사 고발하고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형사법원과 민사법원은 위 사실이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대상이라 보았고, B씨 등에 대해 형사 유죄판결, 민사 손해배상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들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C씨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금융감독원의 실무 해석이 달라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전환사채 등 주식형사채의 발행뿐만 아니라 인수도 주요사항보고서 제출대상으로 명시하여야 한다.
이후 필자는 2015년 12월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 주요 간부들이 참여한 워크숍에서 발표를 하는 기회에 A회사 사례를 들어 금융감독원 실무해석의 문제를 피력하였다. C씨와 같은 피해사례와 법원의 판단이 있더라도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결이 아니었기에 금융감독원은 계속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그대로이고, 금융감독원의 실무 해석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필자는 상장회사 공시 담당자 대상 강연에서 공시 주의사항으로 A회사 사례를 소개하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한 공시담당자는 실무상 전환사채 인수가 여전히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대상이 아니며, 공시를 하려고 해도 공시시스템에 입력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의 공시 설명자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같은 수법으로 선량한 투자자들이 유린당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그러한 사례를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되었음에도 몇 년째 달라지지 않고 있다면 투자자 보호에 소홀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금융감독원의 조속한 실무해석 변경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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