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업계의 한 축인 금호아시아나그룹 고(故) 박인천 창업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올해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의 성공적인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으로 항공업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관측됐으나, 코로나19로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토대를 놨던 박 창업회장을 상징하는 ‘도전’과 ‘개척’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박 창업회장의 36번째 기일을 맞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비롯한 금호가(家)가 함께 모여 고인의 뜻을 기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는 그룹차원의 행사는 별도로 하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하게 고인을 기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 창업회장의 아들인 박 전 회장이 지난해 그룹의 수장직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는 매년 박 전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박 창업회장의 기일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깊다. 매각 여부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인 금호산업과 인수주체인 HDC현산, 매각대상인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금호산업의 경우 아시아나항공 지분(구주) 30.77% 매각을 통해 마련될 3228억원(주당 4700원)으로 그룹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HDC현산이 최근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인수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그 가격이 대폭 깎일 수 있는 상황이다. 현실화되면 금호가가 자금난으로 그룹의 지배력을 잃을 수 있는 사태까지 올 수 있다.
HDC현산도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단 한번의 M&A로 국내 항공업계 2위를 차지할 수 있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장인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반대로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의 재정이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에서 인수했다가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양사의 계약 체결 후 아시아나항공 부채는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4조5000억원 증가했다. 또 지난 1분기 부채비율이 작년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으며, 자본총계는 같은 기간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하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정 회장이 고민하는 배경이다.
당사자인 아시아나항공도 이번 M&A에 명운이 걸렸다. 국내 항공업계 2위로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느냐, 아니면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느냐가 달려 있다. 장기간 구조조정으로 지친 임직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이 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아시아나항공 M&A의 주체들이 박 창업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다시금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들이다. 박 창업회장은 1946년 4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광주에서 택시 2대를 갖고 운수업에 투신했다.
이를 바탕으로 타이어산업, 무역업, 화학산업 등에 뛰어들어, 금호아시아나의 기반을 닦았다. 그는 늘 “정직, 근면, 성실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하며 영면에 들기까지 도전과 개척, 결단을 멈추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언제나 위기와 기회는 함께 찾아온다”며 “1세대 경영인들도 어떤 방식으로 이를 대응하고 돌파하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운명이 바뀌었으며, 이번 M&A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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