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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시선’이 필요: 자학을 넘어 자부심으로, 그러나 자만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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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훈 기자
입력 2020-06-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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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진=서울시교육청]

코로나의 초기 국면에 우리 국민들은 코로나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 많은 비판과 분노를 쏟아냈다. 마스크를 구하러 약국에 긴 줄을 서면서, ‘이게 나라냐’하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신천지 사태로 온나라가 위기의식에 휩싸였으며 정부의 늦장대처를 비판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글로벌한 수준에 팬데믹 상태에 들어가고, 외국에서 한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찬사를 쏟아지고 한국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면서, 우리의 인식에도 급전직하 큰 변화가 생겨났다. 총선 결과 조차도 후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의료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코로나19 대응 선진 사례로 꼽히는 한국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당국자들을 파견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보건서비스(NHS)로 보건의료제도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영국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식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구나 코로나에 대응하는 여러 나라의 대응전략을 국경과 도시를 봉쇄하는 ‘폐쇄형 대응전략’과 개방형 극복전략으로 구분한다면, 한국은 투명성에 기초하여 국경과 도시 봉쇄를 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방역수칙 참여로 코로나를 봉쇄해서 코로나를 이겨가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게 되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여러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고, 그 효과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폐쇄, 이동금지, 국경봉쇄 등의 강력조치 없이 개방성을 유지하며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대처해 나가서 방역 성공에 근접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찬사는 여전하다.

이제 자연스럽게 K-방역이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모두에게 도움받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를 선도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처럼 자부심을 가져가는 듯하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한국국민들은 코로나 국면을 거치면서 하나의 새로운 인식론적 딜레마를 해결해야 상황에 직면해 있다. 즉 방역과 관련하여, 한편에서는 우리가 매일 ‘술안주로 씹어대면서‘ 비판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우리 현실과 다른 한편에서는 외국에서 찬사를 보내는 또다른 우리 현실을 조화시켜야 하는 딜레마이다. 이것은 비단 방역문제만이 아니라 보건의료체제 일반, 나아가 우리의 사회와 문화, 국정 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이제 자학만 하지 말고 자부심을 갖되 자만하지 않고 ‘2개의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먼저 한국은 자생적 근대화에 실패한 이후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경과하면서 일종의 식민주의적 인식을 가졌고 우리의 전통, 문화, 현실에 대해서 자학적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이런 인식은 전해방 이후의 혼란과 전쟁과 빈곤, 독재라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왔다. 자연스럽게 미국에 대한 모방적 시각,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서구 우월주의적 혹은 서구 ‘숭배적’ 시각을 가지고, 매일 ‘서양은 저런데, 왜 우리는 이러냐’는 식의 자학적 인식을 토로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지배적 상태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는 K-방역이라는 말은 이러한 우리의 인식세계에 당혹감을 촉발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오스카 황금종려상 등 국제영화제의 상을 휩쓴 ‘기생충’ 이나 세계에 영감을 주는 BTS의 노래도 바로 우리의 기존 인식에 교란을 만들어내는 현상들이다. 서구의 피원조국이었던 나라가 세계 최초로 원조 공여국이 되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자학적 시선을 가진 것은 식민지 상태를 살아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시선일 것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는 인도나 반(半)식민지 상태에 놓였던 중국에서 서구는 앞선 문명의 상징처럼 인식되었고 전통은 후진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우호적 시선도 이런 맥락 속에 있다.그러나 이것은 과도하게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을 낳았고 우리의 현실을 ‘자학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제 이러한 자학적 시선을 넘어서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자학으로부터 자부심으로’ 정신적 기조가 변화하는 것은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보다 더빨리, 중국의 경우 ‘중국 굴기론’ 등으로 이러한 민족심리적 변화를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자부심이야말로 우리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고 우리의 전통, 문화, 현실 속에서 세계에 영감을 주는 그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에토스이다.

그러나 이 자부심이 자만으로까지 발전하거나 자기중심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2개의 시선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부적 시선과 외부적 시선이다. ‘마스크 수급 사태’를 둘러싸고도 한편에서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하는가'하는 시선과, 또 다른 한편에서는 외국에서까지 벤치마킹할 만큼 훌륭히 대처하고 있다는 시선이 그것이다. 전자의 시선도 물론 편차가 클 수 있다. '잘하고 있다'는 평가부터, '모든 것이 대통령 탓이며 최악이다'라고 하는평가까지 다양할 것이다. 나는--이렇게 첨예한 갈등적 상황이 조금 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그것 자체가 정치발전과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지점에서 세계가 벤치마킹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지만, 우리 현실에 만족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시선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자기 집단을 넘는 보편성과 선진성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이 두 가지 시선을 모두 가지고 조화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자가 있어야 우리는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해갈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시선만 있으면, '쓸데없는 자학'에 빠져들게 된다. 내부적 시각에서 비판적 시선이 있는 것은--너무 극단적인 시선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우리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대수준이 높은 것이다. 설령 어느 지점에서 외국의 찬사를 받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배가 고프다”. 이것 때문에, 과도할 정도로 '지지고 볶으면서'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면, 우리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우리의 장점을 보지 못하면 일반화도 못하게 된다. 전자에만 매몰되면 세계적인 것을 만들 수 없다. 우리 현실, 우리 문화, 우리 정책, 우리 삶을 부정 일변도로 보면 외국에 공유할 만한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나는 교육현실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우리모두는 개탄하며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과도하기도 하다. 예컨대 한국교육에 대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학교를 기준으로 하여 현재의 교육과 학교현실을 비판한다. 세계적 수준의 교실 공간과 학교 건축이 탄생하고 있는데, 여전히 감옥 및 군대와 학교의 건축양식이 같다고 비판한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왜 아이들이 그렇게 공부도 않고 말썽만 부리고 노는가’라고 바라보지만, ‘뽕짝’이나 부르면 지내던 구 세대에 비해 우리의 젊은 세대는 세계와 나란히 겨루는 K-팝을 만드는 세대이며 세계가 따라 부르는 BTS의 세대이다. 한국교육현실에 대한 자학적 인식을 벗어날 수 있는 근거도 많다. 한국교육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찬사에서 보듯이 많은 외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교육입국’의 긍정적 요소도 많고 교육불평등에 대한 불만도 넘친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국면에서 590만이 넘는 학생이 전국적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하는 ‘나라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2개의 시선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그 양자 사이의 균형과 조화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공자의 유명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말이 있다.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체계가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빼질 수도 있고 위태롭다"는 말이다. 나는 공자의 이 말을--앞서의 논의의 연장선 상에서--스스로에 대해 자학만 하면서 다른 나라의 것을 모방하고 배우는 것(學의 행위만 하는 것)과 반대로, 자부심 차원을 넘어 오직 자만심에 빠져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思의 행위만 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한국은 추진국 중에서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민주화에서도--민주주의의 글로벌 퇴조의 물결 속에서도--촛불시민민주주의혁명을 할 정도로 외부로부터 찬사를 받는 수준에 도달했고, 이번에 K-방역에서도 모범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자학적 식민지 멘텔리티를 벗어나 이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제 2개의 시선을 가지고 한편에서는 자만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배우고 선진사례들을 탐색하고 융합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모방과 배움 속에서 우리만의 세계적인 것을 창출하는 과제에 새롭게 도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K-방역 뿐만 아니라 K-교육 등 새로운 K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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