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정신분열병, 조발성 치매
조현병(調鉉病)은, 기타나 바이얼린 같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는 행위인 조현(調鉉)에 이상이 생긴 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러 줄의 현(鉉)이 적당한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어야 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질병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우리나라에서 만든 병명이다. 이 명칭은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가 2011년 아시아정신분열증학회에서 발표했고 이후 대한의사협회와 국회 승인을 거쳐 확정됐다.
조현병 이전에 쓰던 명칭은 정신분열증 혹은 정신분열병이었다. 이 질병은 영어문화권에서는 schizophrenia(스키조프레니아)라고 쓰는데, 스위스 의사 파울 오이겐 블로일러(Paul Eugen Bleuler, 1857~1939)가 1908년에 만든 말이다. 스키조프레니아는 스키조(분열)와 프레니아(정신)의 합성어다. 그대로 번역하면 정신분열이다.
스키조프레니아 이전에는 '조발성 치매(早發性癡呆, dementia praecox)'라는 명칭을 썼다. 독일 의사인 에밀 크레펠린(1856~1926.Emile Kraepelin)은 처음으로 조현병을 하나의 독립적인 장애로 분류한 학자였다. 이 질병이 청소년기에 발병되기에 '조발성(어린 시절 발병하는) 치매 증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블로일러가 만든 말인 스키조프레니아를 그대로 쓰자니 너무 길고 어려웠기에, 국내에서는 그것을 직역한 '정신분열'이란 병명을 썼다. 그런데 이 말이 주는 부정적 어감이 사회적 편견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미쳤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그대로 옮아온 듯한 이 명칭이 병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었다.
일본에서는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이라고 부르는데, '정신'이라는 말은 빼고, 종합적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상실한 병이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결정했다. 홍콩에서는 사각실조증(思覺失調症)이라고 하는데, 사각(思覺)은 생각하는 행위로 '정신'과 유사하면서도 판단이나 지각하는 것을 표현해 정신 전체에 대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말이다. 즉 생각을 조절하는 기능을 잃은 병이라는 의미다.
조현병이란 병명은 '나사 빠진 표현'
우리나라에서 쓰이게 된 조현병(調鉉病)은, '정신병'이라는 어감을 빼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뉘앙스를 완전히 지우려고 하다보니, 이것이 무슨 병인지 한자를 읽어봐도 알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병명을 지을 때, '현(鉉)'이란 독특한 말을 넣은 것은 우리 말에 가끔 쓰이는 '정신줄을 놨다'는 표현 때문일지 모른다. 팽팽하게 조여진 정신의 줄을 '현(鉉)'으로 본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듯 했다.
그런데, 조현(調鉉)은 그 표현된 의미만으로 보자면 현이 조율된 상태다. 현이 잘 조율된 것이 병이 된다면, 오히려 정상인이 질환자가 되어야할 판이다. 일본이나 홍콩에서 실조(失調)라는 말을 쓴 이유는, 조율에 실패했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이다. 조현을 실패한 병이 되려면 '현(鉉)실조병'이 되어야 한다. 그게 이상하다면 '심현(心鉉)실조병'이라 썼어야 했다. 함부로 말을 만들고 줄이다 보니, 병명이 엉성해진 꼴이라고 볼 수 있다. 조현병은 그대로 풀면 '정신 차리는 병'이 될 판이다. 뭔가 나사 빠진 말이 아닌가. 어쩌다 보니 병명조차도 이 병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조현병의 발병 확률은 인구의 1%가 될 만큼 드물지 않은 질환이다. 그리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만성질환이기도 하다. 증상으로는 피해 망상, 종교적 망상, 관계 망상 같은 사고 장애나 환청, 환시, 환촉(幻觸)같은 지각 장애,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 어려운 인식과 공감능력 장애, 언어 구사의 장애 등 정신기능의 모든 영역에 걸친 증상을 가리킨다.
볼턴이 '조현병' 아닌가?···청와대의 저렴한 응수
미국의 존 볼턴 전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문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구상과 관련해 '문재인의 조현병같은 생각(Moon Jae-in's schizophrenic idea)'이란 표현을 써서 논란을 불렀다. 볼턴은 하노이 회담 결렬 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난 내용을 소개하며 문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논리가 '조현병같다'고 말했다. 문대통령이 당시 김정은위원장이 가져온 '영변 핵시설 해체 카드'에 대해 긍정평가를 하면서도, 중국의 비핵화 해법인 수평적이고 동시적인 원칙을 지지한다는 것이 이율배반이라는 말을 '스키조프레닉'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22일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정상간 진솔하고 건설적 합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이라면서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스키조프레닉에 관해. "그것은 그 자신이 판단해봐야될 문제다, 본인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고 되받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비판은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한 뒤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우선 '스키조프레닉'이 우리 말의 '미친'이나 '정신분열병적인'이란 어감과 동일한지 냉정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김정은의 제안과 중국의 비핵화 방안을 동시에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볼턴의 눈에 비정상적으로 보였을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의 입장이 분명히 다른 것인데도 양쪽 다 오케이를 하는 것은, 미국의 외교안보 당사자로서 난감한 태도였을 수 있지 않을까. 청와대가 굳이 신속하게 석명을 하고자 했다면, 이런 견해나 주장에 대해 팩트를 밝혔어야 했다.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이나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는 방식의 모호하고 직정(直情)적인 반격은, 오히려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볼턴이 남의 대통령의 언행을 '스키조프레닉'이라고 썼다고 해서, 바로 받아쳐서 오히려 너야 말로 '스키조프레닉'이 아니냐는 방식의 힐난은 동네 아이들의 거친 언쟁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외교도 자존감도 애국도 아니다. 이 나라 품격있는 국민들을 무안하게 하는, 즉흥정치의 경솔일 뿐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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