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이 남긴 결과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주류교체론이다. 지난 20대 총선(2016년)부터 19대 대선(2017년), 그리고 7회 지방선거(2018년)과 이번 21대 총선(2020년)까지 네 차례 전국단위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전 전승을 거두며 한국사회 주류가 교체됐다는 조심스러운 진단마저 나온다. 그래서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라는 낯선 외래어가 등장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총선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당체제가 아닌 1.5당 체제라는 뉴노멀 시대가 왔다.”라며 이는 “한국사회의 주류가 산업화세력(1960~70년대)에서 민주화 세력(1980~90년대)으로 교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즉 오랫동안 파워 엘리트로 군림하던 보수·산업화세력(박정희・TK・1950년대 이전 출생)이 이제 비주류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반대편에 서 있던 진보・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 태생)가 새롭게 차지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586세대는 이번 2020년 총선에서 180석 슈퍼여당에게 막강한 의회권력을 안겨준 주역 가운데 하나이다.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 1960년대에 태어난 586세대 출신 정치인들은 이번 21대 국회의 최대 세력이 됐다. 보수언론사에서조차 진보화한 50대 유권자들이 이를 뒷받침했다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해석일까?
사실 50대는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스윙보터, 부동층이라고 불린다. 50대 역시 경제 이슈,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하다. 아니 오히려 가장 민감한 세대이다. 통계청 2015년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이 49.2세로 조사되었다. 평균 50세 미만에 직장에서 퇴직해 반(半) 실업자로 전락하거나 또는 약간의 퇴직금으로 어쩔 수없이 영세자영업을 시작해야 하는 50대에겐 생존의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용돈연금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국민연금은 사실 매우 부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50대는 퇴직과 노후준비에 매우 민감하다. 현재의 50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가장 큰 유권자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은 평균 50세 미만에 직장에서 퇴직을 강요당하고 있다.
통계청이 2005년부터 경제활동인구 고령층(55~79세) 부가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를 재구성하면 다음 <표 3>과 같다. 그런데 2007년은 고령층(55~64세)의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이 처음으로 50대에서 40대로 낮아지면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로 참패했다. 50대의 반란인 셈이다. 그 후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중에도 고령층이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은 계속 낮아지며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2012년은 그나마 고령층의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 비율을 현상 유지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2석 차(152석 대 140석), 대선에서 3.5%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2014년 지방선거는 세월호 사건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의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 비율을 약간 올렸기 때문에, 즉 보수당의 지지기반인 고령층 고용비율을 올렸기 새누리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 총선은 보수당의 지지기반인 고령층 고용비율이 49%까지 뚝 떨어졌기 때문에 국민의당으로 분할투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하여 새누리당이 2위로 밀려나버렸다. 이어진 2017년과 2018년 대선・지방선거는 최악의 고령층 고용비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보수당 성적표도 최악을 기록했다.
그런데 다행히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60세 정년연장법 때문에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이 공공부문과 대기업 등은 이미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 여파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2019년 고령층 고용비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그 비율도 49.4%까지 늘어나며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압승의 한 요인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제정한 이 법이 문재인 정부가 수혜를 입어 최근 선거에서 50대와 60대의 지지를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우리나라 50대는 일자리 문제가 선거에서 표심을 가르는 제1의 기준이 된다. 그 점을 인식한 까닭인지 몰라도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또 다시 고령화 추세를 대비해 65세까지 정년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점들이 이번 총선에서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50대 ‘유권자의 정서’를 움직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02년 대선 당시 3040세대는 2012년에는 자연 수명 증가에 따라 4050세대가 되었으며 그들은 이미 2002년 기호 2번을 찍었던 경험이 있는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2012년 총선 때도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정당보다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연합에 더 많은 표를 던진 바 있다. 또한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 사상 역대 두 번째로 높은 투표 참가율을 보이며 2004년 총선 이후 실시된 전국 단위 선거에서 야권에게 유일하게 승리를 안겨준 주역이다. 그들은 당시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연합이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실시, 0∼5세 영·유아 무상보육 실시, 기초노령연금 급여 대상 확대,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시, 혁신형 자율학교 확대 등 한나라당과 차별화된 공약을 발표하도록 견인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이들 유권자는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높은 세대에 속한다. 결코 단순한 기계적 중도층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특히 50대의 경우에는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50대 초반만 넘어서면 대다수가 직장에서 눈치를 봐야하고 명예퇴직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로부터 밀려난 50대들에겐 준비된 노후 자금이나 연금도 제대로 없으니 그 누구보다도 더 사회적 안전망이나 복지 확대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다.
그런데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민주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각종 진보적 의제를 흉내 내고 여러 가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른바 보수 후보의 좌 클릭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3040세대가 4050세대로 변화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 유권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는 사실과 투표 참여가 매우 높다는 사실도 사전에 충분히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의 영입이었다. 이들에 의해 박근혜 후보의 주요 공약들이 발표되었다. 정치개혁 분야는 “국회의원 후보 선출은 여야가 동시에 국민참여경선으로 선출하는 것을 법제화하겠다. 부정부패 사유로 재·보궐 선거 발생시, 원인 제공자가 선거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겠다. 국회개혁을 위해 국회 윤리위원회를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하겠다.” 경제민주화 분야는 “대기업 규제만을 위해 별도의 법률인 대규모기업집단법을 제정하겠다. 기존의 순환출자 의결권을 제한하여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규제하겠다. 경제범죄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겠다.” 복지 확대 공약으로는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 노인 임플란트를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겠다. 0~5세 아동에 대한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 등이다. 이 중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공약은 직접적인 수혜 계층인 60대는 물론 잠재적인 대상인 50대에게도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물론 문재인 후보 역시 ‘기초노령연금 2배로 인상’이라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차별성이 없었고 구체성에서 각인이 되지 못했다. 60대 노인들은 물론 당장 명예퇴직을 당한 50대에게 명시적으로 제시한 월 20만원은 큰돈이었다. 더구나 30년 동안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부어도 월평균 수령액이 87만원(2013년 기준)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 새누리당의 홍보 전략은 적중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후보는 50대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50대를 위한 정책’을 특별히 따로 준비해서 자신이 직접 발표했다. 또한 방송연설 중 한 편을 ‘내 친구 50대에게’라고 제목을 붙여서 특별히 50대에게 할애하기도 했다. 그러나 50대로부터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그들을 제대로 어루만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지지층이라는 40대로부터도 격차를 벌이지 못해 박근혜 후보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50대는 결코 중도층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정치개혁과 경제민주화, 그리고 복지 확대를 간절하게 원하는 세대이다.
무당층 또는 스윙보터(마음이 흔들리는 투표자라는 의미에서 스윙보터이다. 우리말로는 ‘부동층 유권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게 된다)로 불리는 유권자는 여야를 넘나드는 50대가 주축이다. 이번 2020년 총선에서는 진보적인 여당을 더 많이 지지했으나 계속 유지한다는 건 장담할 수 없다. 특히 586세대로 불리는 50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라는 특유의 역사적 경험을 공통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1997년 최초의 정권교체 과정에 참여하였고 2002년에도 광범위한 세력으로 뭉쳐 노풍(盧風)을 발화시켰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계기로 이들도 점점 보수화되어간 경험이 있다. 아니 사실은 실리를 찾아갔다거나 생활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동안 586세대는 민주진보진영의 주된 기반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은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만은 않는다. 2014년 말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민 경제 행복지수’를 살펴보면, 직전 10년 평균 기록으로 40대 연령이 100점 만점에 40.9점으로 연령대별 최하위를 기록했다. 수치가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이다.
최근 선거를 보면 생존권 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획득한 이후 지금의 여권이 승리한 선거는 모두 생존권과 결합됐을 때였다. 생존권은 먹고사는 문제와 안전문제가 우선이다. 2004년 이후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민주당이 처음으로 승리한 건 2008년 6월 4일 실시된 9개 기초단체장 재·보궐선거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선거였지만 민주당은 광우병 소고기 파동이라는 안전과 직결된 싸움에 국민과 동참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그 후 민주진보 야권은 2008~2009년 재·보궐선거 연승을 거쳐 2010년 지방선거까지 압승을 기록했다. 이때도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연합은 한나라당이 저소득층부터 순차적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한다는 방침인 것과 달리 2011년부터 전면적으로 초중고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한 마디로 먹고사는 문제였으며 이는 결국 그대로 적중했다.
유권자들은 갈수록 생존권과 관계된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듣고 싶어 한다. 일자리, 기초연금, 국민연금, 임금피크제, 청년실업, 기본소득 등 사회・경제 문제에 보다 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요구한다. 덮어놓고 여당을 비난한다고 하여 야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의식은 변하고 있는데 야당의 선거 전략은 ‘보수 대 진보’라는 과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이성적이지는 않다. 단순한 공약들만 나열하고서 선택을 강요할 순 없다. 일부 여론만을 보고서 전체 유권자의 의사인 것처럼 오판해서도 안 된다. 야권이 항상 정권심판론에 빠지는 함정이다.
구주류 산업화・보수 세력은 이념은 반북・반공주의, 세대는 산업화를 겪은 60대 이상, 지역은 TK기반, 그리고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은 군부(1980년대 까지)・관료・판검사 출신 법조엘리트 중심이었다. 그런데 신주류 586・진보세력은 1997년 정권교체 이후 새롭게 탄생한 민주진보연합이 주축이다. 이들의 이념은 중도에서 중도좌파, 세대는 민주화 주역인 50대 이하, 지역은 수도권기반, 그리고 대리인은 학생운동가・관료・진보적 법조엘리트 중심이다. 누가 더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실사구시적으로 다가설 것인가?
<표 3>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연령 및 평균 이직연령(55~64세)
최 광 웅(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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