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불량 생산을 범죄로 규정한다"며 "삼성은 이제 양(量) 위주의 경영을 과감히 버리고 질(質) 위주로 간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오늘날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질(質)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질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직도 기업경영은 물론 정부 정책도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건설산업도 여전히 양 위주다. 수익성보다는 수주나 매출을 중시한다. 생산성 증대보다는 투자확대를 요구한다. 품질이나 가치보다는 낮은 가격을 선호한다.
최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의결한 '해외수주 활성화 방안'(6월 15일)도 마찬가지다. 올해 해외수주 목표를 300억 달러로 설정하고, 1000억 달러 규모의 30개 핵심 프로젝트를 선정해 지원을 가속화하겠다고 한다. 사실 이번 방안은 작년 2월에 발표했던 '해외수주 활력 제고방안'이나 별다를 게 없다. 지난 3년간 해외수주 확대를 위해 이런저런 대책과 방안을 발표해 왔지만, 해외건설 수주실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10년에는 71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18년에는 321억 달러, 2019년에는 223억 달러로 줄었다. 올해 3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2018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주의 질적 수준이다. 국가 리스크가 대단히 높은 신흥국에서 정부 지원으로 한두 건 수주를 한들 그렇게 떠들썩하게 축하할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숱하게 경험해 봤지만, 그런 해외건설사업일수록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창피했다. 수주한 해외건설사업의 부실화로 인한 어닝 쇼크를 우리 기업들은 한두 번이 아니라 세 차례나 겪었다. 1980년대 초반의 중동 건설 붐, 1990년대 중반의 동남아 건설 붐,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0년대 초반의 해외 플랜트 건설 붐 때 수주 신화에 가려져 있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어닝 쇼크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천문학적인 사업손실은 물론이거니와 부실기업의 부도나 구조조정이 수반되면서 국가 경제에도 큰 손실을 안겼다. 이제 해외건설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다. 해외수주 실적이 떨어져도 과거처럼 수주목표를 높여서 무조건 수주를 확대하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를 하겠다고 한다. 국내 주택사업으로 간신히 해외부실을 커버해 와서 그런지, 이제 다시 해외 부문을 더 키워 보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아예 해외사업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해외건설도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해야 한다. 수주보다는 수익성과 생산성을 중시해야 한다. 인력의 숫자보다는 전문성과 역량을 중시해야 한다. 이미 기업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아직도 질보다는 양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한국 경제를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바꾸고자 한다면, 정부도 양보다 질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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