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디지털화에 2030년까지 구리 수요 연간 2.5% 증가 전망
CNBC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헤닝 글로이스타인 에너지·기후·원자재 디렉터는 23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각국 정부가 친환경 인프라확대와 디지털화에 초점을 맞춘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구리 수요의 급증을 예고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특히 아시아와 유럽을 중심으로 대규모 친환경·디지털 부양 프로그램이 구리 수요를 밀어 올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면서 "전기차, 5G 네트워크, 재생 에너지 생산 등은 막대한 양의 구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국의 부양 프로그램이 2030년까지 매년 평균 연간 구리 수요를 2.5%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2030년까지 수요가 3000만t 더 필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내연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가속하면서 구리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봤다. 보고서는 "전기차 산업은 현재 구리 수요의 약 1%를 차지하는 수준이지만, 2030년에는 수요의 10%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글로이스타인은 또 "중국이 앞으로 10년 동안 경제 디지털화를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되며 각국 정부들 역시 전기차 보조금 확대와 그린 인프라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구리는 현재 추진되는 모든 산업에서 사실상 핵심 원자재"라고 강조했다.
구리는 가격 움직임이 향후 경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구리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경제 봉쇄령 속에 3월 가격이 폭락했다가 최근 회복세를 되찾았다. 24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릿값은 t당 5878.25달러로 5개월래 최고 수준에서 거래 중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달 초 올해 구릿값 전망치를 당초보다 5.4% 높여 t당 5621달러로 제시한 바 있다. 내년에는 t당 6250달러를 가리킬 것으로 봤다.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 중국, 구리 수출국 내 영향력 커질 듯
이 같은 구리 수요 증가의 최대 수혜자는 호주나 칠레 등 주요 구리 수출국이 될 전망이다. 다만 세계 최대 구리 큰손인 중국이 이들 수출국 안에서 미치는 영향력 역시 커질 수 있다고 글로이스타인은 지적했다.그는 "구리 경제의 성장은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구리 시장에서 구매자로서 중국이 갖는 지배적인 지위는 판매국에서 중국이 정치적인 입김이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유라시아그룹에 따르면 중국은 압도적인 정련동 사용국으로 지난해에만 1300만t을 사들였다.
최근 중국과 호주 관계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이 코로나19 발원지로 중국을 지목하며 국제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호주가 적극 찬성한 뒤 중국이 대중 의존도가 높은 호주 경제를 표적으로 보복 조치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했다.
호주에서는 반중 정서가 고조되면서 중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대중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글로이스타인은 중국의 구리 수요 증가로 향후 상황이 호주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고 짚었다.
또 그는 세계 최대 구리 수출국 칠레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를 통해 칠레와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이스타인은 "칠레의 구리 수출량 중 이미 3분의 1이 중국을 향한다"면서 "구리 수출이 늘어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나 화웨이 장비 이용, 무역 협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정치적 압박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