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는 좌충우돌 행보를 계속하다가 2020년 들어서며 미·중 무역 협상 1단계 합의와 코로나19로 지정학적 긴장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이익 우선이라는 이유로 1980년대부터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지속된 세계화를 손바닥처럼 뒤엎었고, 미국의 중상주의적 세계 전략 지속 전망 때문에 세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패권 경쟁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면서 19세기 말 한반도 정세가 지금 상황과 겹치는 것은 역사 반복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대륙·해양 세력의 대립에 시달려 왔지만, 특히 19세기 말은 급박한 시간이었다.
한반도의 봉건시대를 깨기 위한 시도가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으로 시작됐으나 지금도 등장하는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열강의 자국 이익 우선주의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청일전쟁의 실마리가 되었고 이후 한반도는 약 50년을 식민지로 살았으며, 중국은 아시아 패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그러나 필자 생각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표현은 무리가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먼저 개인투자자를 ‘개미’에 비유하는 것은 비하(卑下) 의도가 있는 표현이다. 즉, 1989년 무렵 주가가 1000pt에 다가서며 뒤늦게 집 팔고 소 팔아서 뇌동매매하는 개인투자자의 모습이 마치 단것 주위로 까맣게 모여드는 개미와 같다고 폄훼한 것이다.
이후 언론이나 유료 투자강연회에서도 ‘개미’라는 용어를 너무 당연하게 쓰는 것을 오랫동안 봐왔다. ‘개미’라는 용어를 개인투자자에 비유하는 것은 수정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개인투자자는 금융시장의 정당한 주체이고 금융산업을 먹여살리는 주인이기 때문에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한편 ‘동학개미운동’ 용어를 포털에서 검색해 보면 3월 13일에 첫 기사가 눈에 띈다. 이 시점 포털의 지식검색에도 등장하는 ‘동학개미운동’ 정의는 2020년 들어 건국 101주년을 맞아 개인투자자가 일으킨 반(反) 기관·반(反) 외인 운동으로 주식시장에서 1월 20일 고점 이후 3월 19일 저점까지 9조원을 순매수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서 시장 현황을 조회하니 2020년 개인투자자의 두드러진 매수세는 사실이다. 개인투자자는 올해 6월 26일까지 39조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은 26조원, 기관은 14조원을 매도했다. 그러나 이것만 보고 ‘동학개미운동’이 애국심 때문이라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건국 100주년인 2019년엔 개인투자자는 5조원을 팔았고 외국인이 7000억원 소폭 순매수한 가운데 연기금·금융투자회사가 16조원 가까이 순매수하며 시장을 지탱했다. 한편 개인은 동학개미운동의 상징인 삼성전자를 6월 26일까지 8조4000억원 매수하고 특히 급락기간인 3월 1일에서 19일에 5조원을 매수했으나 최근 한 달은 오히려 1조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정황으로 봐 꼭 애국 관점의 지속적 장기 순매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연구원(KCMI)은 ‘동학개미운동’을 초점으로 한 보고서를 6월 25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개인투자자는 과학적 분석의 위험분산 투자보다는 주가가 과도하게 낮다는 저기매수 동기에 의한 역추세추종거래(Negative feedback Trading)와 신용융자 등 레버리지 투자의 행태를 보였다. 또한, 이 기간 개인매수가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대형주 중심으로 투자를 했다는 분석이다.
다행히 코스피 주가는 3월 19일 저점에서 6월 26일까지 46% 상승해서 이 기간 투자 이익을 챙긴 개인투자자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최근까지 주가가 많이 오른 제약, 바이오, 소프트웨어 산업 투자 비중이 작고, 코로나19 영향에 하락 폭이 큰 항공, 에너지, 여행·레저, 유틸리티,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의 비중이 컸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정황으로 애국 관점보다는 저가 매수의 심증이 커지며 전반적으로 ‘동학’ ‘운동’이라는 용어 사용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애국 관점이 아니라면, 2020년 상반기 개인 주식투자 급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2020년 3월 코로나19의 충격에 의한 주식시장 급락 후 급반등은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코로나19 충격의 여파가 경제지표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주식시장 반등과 경제 악화의 디커플링(decoupling)은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 개인투자자는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 시장의 위험자산 선호 분위기로 투자 확신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다음은 과거 주식시장의 학습효과이다. 코스피 주가지수는 멀리는 2008년 금융위기에 950pt에서 2200pt까지, 가까이는 트럼프 등장 후 지정학적 잡음에도 2000pt에서 2600pt까지 상승했다. 이것을 개인투자자는 반복 학습했다. 이 학습효과와 '나 혼자만 주가 상승 국면에서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저가매수 심리인 FOMO(Fear Of Missing Out)가 가세하면서 개인투자자는 적극 매수에 나선 것이다.
끝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중앙은행의 저금리와 통화정책 완화, 특히 한국에서는 부동산 가격과의 전쟁 선포로 급격히 불어난 저금리 자금의 출구가 없다는 것이 개인 투자를 부채질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개인투자자의 위험 자산 투자심리가 강화되었으나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환매 중지 사태 후 공모펀드에 이어 사모펀드도 투자 대상으로서의 신뢰를 상실하며, 개인투자자가 주식 직접 투자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KCMI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주식형펀드는 약 30조원 지속 감소했고 반대로 증시 대기자금 CMA는 지속 증가했다.
한편 주식예탁금은 2020년 들어 20조원 가까이 증가했고, 개인 순매수도 급증했다. 증시 자금 사정으로 보면 주식시장 상승세를 지탱할 화약고는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경제 상황이다. 6월 중반 이후 세계은행·OECD에 이어 IMF까지 코로나19의 충격을 반영하여 경제 전망을 크게 하향 조정했고, 최근까지 경제활동 재개를 추진하던 미국·유럽 등 선진국이 코로나19의 재확산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한순간 심리적 요인이 무너지고, 주식시장과 경제의 디커플링이 정상화되면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다. 이제 개인투자자는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역사가 이이화님은 동학농민전쟁의 실마리가 된 갑신정변의 김옥균을 열강의 이해관계에 이용당한 비운의 인물로 평가했다. 돈이 최종 목표인 금융시장은 더욱 이해관계가 처절하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용어로 가장 이익이 큰 쪽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개인투자자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개인투자자가 주식 산업의 이해관계에 휩쓸려 갑신정변 같은 사태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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